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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관객을 만나다-LA] 사랑은 버튼이 아니예요
황수진(LA 통신원) 2009-04-08

<도쿄!> 프로젝트에 미국 감독이 참여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스티브 커쿠루

차이나타운에서 시작해서 로스앤젤레스를 해변까지 가로지르는 선셋대로는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현란한 간판으로 가득한 선셋대로의 이미지는 웨스트 할리우드 부근의 모습이다. 예술전용극장 선셋5(Laemmel Sunset5)는 바로 그 웨스트 할리우드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토요일 저녁 예술전용극장 선셋5에서는 태평양 건너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도쿄!>가 한국보다 훨씬 늦게 개봉 중이다. 미셸 공드리의 팬이라는 스티브 커쿠루를 잠시 붙잡았다.

-보고 난 이후에 셋 중에 가장 맘에 드는 영화는 뭔가. =역시 미셸 공드리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가장 마음에 든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완벽하지 않은데도 여전히 그의 작품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마음이 가는 캐릭터가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주인공이 딱히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캐릭터는 아니라서 그녀의 마지막 선택에 100% 공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실컷 뒷바라지했더니 “넌 야심이 없어”라고 말하는 남자친구라든지 언제나 누군가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 기분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정이지 않나. 그녀가 ‘의자’로 변하게 되는 것도, 그녀가 늘 의자처럼 느껴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을 깨닫고 나서도 그녀는 그냥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진짜 의자’가 되어 행복해한다. 그게 정말 흥미롭더라. 다른 영화에서라면 현실을 박차고 나와 자신의 길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을 텐데…. 진짜 의자가 되어버리다니!

-캐릭터 공감에서 히키코모리가 주인공인 봉준호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는 공감하기 힘들었나보다. =하하, 사실 나는 히키코모리와 정반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을 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밖에 나가지 않고 살아가지만 나는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으면 안되니까.

-오호, 어떤 일에 종사하고 있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스토리보드 그리는 일을 한다.

-엇, 그렇다면, 영화의 시작에 나오는 애니메이션 타이틀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흠. (한참 생각하다가) 보면서… 애니메이션 예산이 없었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웃음) 하여튼 나는 <흔들리는 도쿄>도 무척 재미있게 봤다. 로봇이 배달 오는 장면이라든가(아오이 유우를 로봇으로 착각한 모양), 아무도 없는 도쿄의 모습이 좋았다. 나는 감독이 히키코모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자아에 대한 은유를 말한다고 받아들였다. 자기만의 벽을 쌓고, 상처받고 싶어 하지 않는 자아 말이다. 그러나 상처받지 않는다면 사랑할 수 없다, 뭐 그런 메시지.

-흠, 사실은 <흔들리는 도쿄>를 더 좋게 본 것 같은데 아닌가. =정말 좋았는데, 엔딩 때문에 제일 좋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아니, 사랑을 그냥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으로 마무리하다니!

-레오스 카락스의 <오물>은 어땠나. =그 괴물은 도쿄 하수도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일본의 어두운 과거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일본인 감독이 아니라 외국인 감독이 그런 시각을 담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좀 흥미로웠다. 왜 일본인 감독이 일본의 어두운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일까…. 크레딧에 보니 프로듀서들이 일본인이던데 외국 감독들을 기용한 아이디어는 꽤 신선한 것 같다. 특히 역사적으로 서로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한국 감독을 선택하다니. 프랑스와 일본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왜 미국 감독은 안 넣은 건가!

-미국 감독이 포함되었다면, 누구였으면 좋겠나. =로버트 로드리게즈? (웃음) 데이비드 핀처? 너무 뻔한가? 그렇다면 <이디오크러시>(Idiocracy)의 마이크 저지는 어떨까. <이디오크러시>는 꽤 좋은 영화였는데 스튜디오에서 개봉하자마자 바로 내려버린 영화다. 그래서 아무도 그 영화가 얼마나 좋은 영화였는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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