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7일 열린 ‘디지털시네마의 성공적 도입을 위한 조건은?’ 정책토론회 전경.
“디지털시네마 도입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여론을 수렴해서 추진하자.” 지난 3월27일 열린 ‘디지털시네마의 성공적 도입을 위한 조건은?’이라는 제목의 정책토론회에서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여한구 부회장이 한 말이다. 국회 문방위 소속 진성호 의원(한나라당)이 주최한 이 자리에서 디지털시네마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세방현상주식회사의 강상수 부회장은 “만약 전면 도입되면 우리 같은 현상업체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배급업체 NEW의 김재민 팀장은 “디지털시네마의 전송사업을 멀티플렉스를 운영하는 회사가 맡으면 배급사 영업의 자율성을 앗아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잠깐.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전환되는 것은 시대의 대세요 역사의 흐름일 터인데 굳이 딴죽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디지털시네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엄밀히 말해서 디지털시네마는 배급과 영사를 디지털화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필름 프린트를 극장으로 보내 아날로그 영사기로 트는 기존 방식과 달리 디지털시네마는 영화 파일을 극장으로 전송하고 다시 이를 디지털영사기로 상영하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디지털시네마를 도입하면 필름 프린트를 만들지 않아도 되니 당연히 비용이 줄 것이고, 멀리 떨어진 극장에도 손쉽게 영화를 보낼 수 있으니 좀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하게 되며, 필름 손상의 위험에서 자유로워진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산업연구원의 최봉현 연구위원은 디지털시네마를 전격 도입하면 “2005년 기준으로 영화계 전체가 243억원을 절감”하게 되고 “향후 15년 동안 9천억원의 파급효과를 낳게 된다”고 주장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상기술지원센터 원천식 소장도 “디지털로의 전환은 영화산업이 기술적으로 진일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밝혔다.
디지털시네마 조기 도입에 부정적 견해를 펴는 이들 또한 그것이 낳을 효과가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는 얘기다. 기존 ‘아날로그 사업자’들의 피해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그 첫 번째다. 디지털시네마 도입은 필름 수급업체, 카메라 대여업체, 현상소, 영사인력 등에 직간접적으로 타격을 입힐 것이 틀림없다. 강상수 부회장은 “2004년부터 몇년간 스크린 수와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급증해 시설에 거액을 투자했다”면서 대책을 호소했다. 기술표준 또한 문제점이다. 현재 추진 중인 디지털시네마는 미국 표준인 2K(2048×1080)급인데 4K급의 차세대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는 상황에서 굳이 낡은 기술을 채택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 여한구 부회장의 입장이다. 현재 디지털시네마 도입을 주도하는 업체 ‘디시네마오브코리아’(DCK) 또한 논란거리다. DCK는 극장 규모 1, 2위 업체인 CJ CGV와 롯데시네마가 50%씩 투자해 만든 법인이기 때문에 계열회사인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배급시장 독점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디지털시네마 도입으로 피해를 입는 산업을 비롯해 영화계가 DCK 지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여한구 부회장)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결국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디지털시네마에 적극적인 영진위의 원천식 소장조차 “정부가 산업적으로 몰락하는 쪽을 배려해야 한다”라고 주장할 정도다.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말은 새집을 짓는다면서 불도저와 포클레인으로 소외된 자들을 밀어붙이는 도심 재개발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업이 전개되도록 조치해달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