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 지수 ★★★★★ 해프닝존 강추 지수 ★★★★
“심심한데 주유소나 털어볼까.” 모든 소동의 근원은, 어쩌면 그 한마디 아니었을까. 뮤지컬 <주유소 습격사건>은, 10년 전 극장가를 급습해 큰 반향을 얻은 원작 영화와 마찬가지로, ‘그냥’으로 시작해 ‘그냥’으로 끝나는 작품이다. 허무하다 싶을 만큼 대책없지만, 한편으로 오만방자한 젊음의 에너지, 반항하고, 부딪히고, 내지르고, 심지어 밑도 끝도 없이 치고받고 싸워도, 툭 털고 일어나면 회복 가능할 뜨거운 기운으로 꽉 차 있다. 얼핏 뉴욕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함을 옮긴 뮤지컬 <렌트>와 흡사하다. 성의 전복은 없지만, 늦은 시간 주유소를 스쳐간 괴짜들이 무대가 좁다하고 뛰어다니는 동안, 주유소 사장이, 경찰관이, 회사 상관이, 선입견에 머리가 굳어버린 모든 기득권층이 은근히 모욕당한다. 통쾌하다. 영화만큼, 아니 가끔은 영화보다 더 코미디다. 노래와 춤의 조합이, 어느 운 나쁜 주유소를 들썩인 한밤의 해프닝을 좀더 강렬하게 버무리는 까닭이다.
그러고보면 딱 10년 만이다. 영화가 개봉한 게 IMF가 숨통을 조이던 1999년. 실업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는 지금에야 뮤지컬로 부활했으니, 우연이라면 너무 기묘한 우연일까. 그렇다고 줄거리를 다시 복습할 필요는 없다. “야구를 무지 잘한다”는 노마크, “노래를 무지 잘한다”는 딴따라, “그림을 무지 잘 그린다”는 뻬인트, 특기라고 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떼로 덤벼도 한놈만 죽도록 패줄 수 있다는 무대포까지, 옛 모습 그대로, 그러나 좀더 명쾌하게 재현된다. 악을 써대는 주유소 사장은 여전히 돈 긁어모으기 바빠 반갑고, 그 유명한 <오늘도 참는다>가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가운데 무대를 난장판으로 뒤집는 후반부의 소동극은 관객까지 덩달아 흥분하게 만든다. 복층 구조로 만든 주유소 세트나 무대 전체를 그래피티로 물들이는 엔딩신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외투 따윈 벗어두고 환호할 태세를 갖추는 것이, 의외의 재미를 안겨주는 이 해프닝 뮤지컬을 즐길 가장 적절한 자세일 것이다.
코러스부터 비보잉까지 모자람 없이 소화하는 조연배우들도 훌륭하지만 최재웅을 비롯해 꼴통 4인방과 주유소 사장 역의 한성식, 멀티맨 이동근·김승필, 거칠녀 김영옥의 호흡 역시 빼놓으면 섭섭하다. 특히, 한성식과 멀티맨의, 진부한 표현이긴 해도 말 그대로, 몸을 사리지 않는 코믹 연기는 박수 갈채를 받을 만하다. 김달중 연출가의 지휘 아래 원작에도 참여했던 박정우 작가와 손무현 음악감독이 힘을 보탠 값진 결과물이다. 이 폭발적인 뮤지컬을 한결 실감나게 체험하고픈 관객이라면 무대의 연장으로 사용되는 해프닝존, 혹은 적어도 R석 앞좌석을 노리길 추천한다. 나무 의자라 불편하긴 하겠지만 배우들이 끊임없이 앞뒤로 헤집고 다니는지라 100분 내내 들뜬 기분일 게 틀림없다. 오, 3월20일자 공연 중 최재웅의 팔에 안겼던 여자분, 진짜 부럽더라는 말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