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배우들은 독립된 종(種)으로 구분하는 게 좀더 과학적인 처사다. 그녀들은 예뻐 보이려 기를 쓰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는 기묘한 존재들이다. 추악하고 자기 파괴적이고 자기 기만적인 여자를 연기하면서도 아름답다. 심지어 그녀들은 ‘여배우’라는 종이 대면하는 시간의 법칙을 거스른다. 보톡스 맞은 팽팽한 얼굴로 과거의 영화를 곱씹는 대신 자신들을 감독해온 감독들을 뛰어넘어 점점 소름 끼치는 예술가가 되어간다. 카트린 드뇌브, 이자벨 아자니, 에마뉘엘 베아르, 이자벨 위페르, 그리고….
그리고 줄리엣 비노쉬가 있다. 레오스 카락스의 <나쁜 피>와 <퐁네프의 연인들>, 앙드레 테시네의 <랑데뷰>, 루이 말의 <데미지>,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블루>에서 그녀는 90년대 영화광들의 여신이었다. 앤서니 밍겔라의 <잉글리쉬 페이션트>, 라세 할스트롬의 <초콜렛>에서 그녀는 프랑스와 프랑스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국제적 스타가 됐다. 미카엘 하네케, 아모스 기타이, 허우샤오시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비노쉬를 찾는다. 그녀는 국경없는 위대한 작가들의 성전에 군림하는 뮤즈다. 게다가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무용을 한다. 줄리엣 비노쉬라는 이름에는 예술가의 위엄이 울린다.
줄리엣 비노쉬는 근사한 예술작품 두개를 껴안고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하나는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작업한 영화 <여름의 조각들>이고, 다른 하나는 무용가 아크람 칸과 공연한 <in-i>다. 그녀의 주요 출연작을 보고 싶다면 3월31일부터 4월28일까지 매주 화요일 하이퍼텍나다에서 열리는 주한 프랑스문화원과 영화사 진진이 공동 주최하는 시네 프랑스 프로그램 ‘줄리엣 비노쉬 특별전’을 둘러보시길.
줄리엣 비노쉬는 개별 인터뷰를 전혀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모두가 실망했다. 하루 만에 그녀는 마음을 바꿨다. 호텔로 달려가자 비노쉬는 일식 레스토랑에서 쇠고기 덮밥을 먹고 있었다. 매니저도 홍보담당자도 없이 혼자였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녀는 쉴새없이 쌀과 고기를 씹으며 테이블을 탕! 탕! 치거나 푸하하하하하하! 웃었다. <나쁜 피>의 안나처럼.
-어젯밤 첫 공연은 어땠나. =공연장이 5층이더라. 산 위에 올라간 듯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런 높은 곳에서 계속해서 춤을 추면 숨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웃음) 또 왼쪽 무릎이 조금 안 좋아서 춤추다가 잠깐 멈추기도 했다. 아무도 모르더라. 나체로 스테이지에서 떨어진 뒤 재빨리 다시 올라갔는데 그것도 아무도 모르더라. 공연의 일부라고 생각들을 했나보지. (웃음)
-칸영화제에서 구스 반 산트의 <파라노이드 파크>를 보던 중 영사사고로 영화가 잠시 멈추었다. 그 순간 다들 그게 영화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는지 객석이 조용했다. =반 산트의 의도라고 생각했구나. 아주 좋은 현상이다. (웃음)
-입국할 때와 기자회견장에서 약간 들뜬 듯하더라. 기대치 않았던 환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가보다. 오래전에 이미 레오스 카락스의 영화들이 이곳에서 꽤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이 너무 바빠서 방문할 수 없었다.
-<퐁네프의 연인들> 시절 레오스 카락스가 한국에 왔었다는 거 아나. =그랬나?
-꽤 오랫동안 머무르다 갔는데 잡지 속 그의 모습을 보니 아주 불만족스러운 눈치더라. =이유가 뭐였나.
-글쎄. 여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어쨌거나, 그는 아주 이상한 남자니까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웃음) =맞다. (웃음) 그는 이상한 남자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어서 이 사회에 맞추기가 힘들다. 그 때문에 그는 흥미진진한 예술가다. 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일 때가 좋다. 시스템에 적응하지 않는 예술가들을 좋아한다. 적응은 곧 타협이다. 적응하려는 순간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의 일부가 될 뿐이다. 존 카사베츠, 잉마르 베리만, 레오스 카락스. 모두 자신의 길을 갔다. 레오스 카락스는 그간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자기 자신만의 내면적 문제도 많았다. 그걸 극복하고 있다.
-이렇게 공연 무대에 서는 것도 타협하지 않으려는 당신만의 몸부림인가. =물론! 스스로를 새롭게 발명하는 것이다. 그저께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말하더라. 90년대가 나의 황금기였다고. 나는 약간 바보스럽게도…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다이아몬드기겠네! (박장대소) 나는 지금 내 경력에서 가장 창의적인 때를 맞이하고 있다. (손바닥과 주먹을 강하게 부딪히며) 예전에는 누군가를 만족시키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나는 한명의 병사였다! 천사였다! 무엇이든 해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원했다! (웃음)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더욱 강해졌다. 그림을 그리고, 공연을 하고, 누구와 영화를 하고 싶은지를 직접 결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렇게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걸까. 한 사람의 경력은 분절되지 않은 거대한 아치다. 피카소에게는 청색시대가 있고, 분홍시대가 있고, 입체파 시절이 있다. 그러나 모든 시절은 한 사람의 내면 속에 있는 거다.
-전혀 다른 영역의 예술가들이 만났다. 아크람 칸의 어떤 점이 매혹적이어서 무대에 서게 된 건가. =그의 눈! 거기 담긴 고요함과 부드러움. 그걸 목도하는 건 너무 아름다웠다. 그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3일 동안 같이 일해보자고 했을 때, 그건 열림이었다. 위대한 초대였다. 첫날은 흥미진진했다. 그는 안무를 했다. 나는 무조건 따랐다. 하지만 나는 댄서가 아니다. 거울 앞에서 나를 보고 있자니 정말 처량했다. 이런 식은 싫다고 했다. 우리 둘 사이의 어떤 언어를 발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무(無)로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둘쨋날. 나는 그를 흉내냈다. 서로는 서로의 거울이었다. 즉흥연기를 하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서로 교환했다.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이 하나로 묶이기 시작했다.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심장의 박동이 리듬을 만들었다.
-20대 초반에 당신의 초기작들을 봤다. 스크린이라는 사각의 장벽을 종종 답답해하거나, 개의치 않고 뚤어버리고 싶어하는 감정 같은 걸 느꼈다. 공연을 통해서 그런 답답함을 해소하고픈 욕심도 있나. =난 영화 찍을 때 스크린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 그런가. =(박장대소하며) 하하하하. 나는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도 알고 싶지 않다. 크게 나오든 작게 나오든 클로즈업이든 뭐든 내 알 바 아니다. (웃음)
-감독들 꽤나 힘들었겠다. =그게 제멋대로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아주 프로페셔널한 사람이다. 하지만 촬영에 들어가면 나는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지 않다. 많은 배우들이 박스 안에 자신들을 집어넣는다. 다들 좋은 테크니션이 되고 싶어 하니까. 나는 거기에 반대한다. 카메라는 배우를, 배우의 감정을, 배우의 자유를 따라야 한다. 물론 지나치지 않은 선을 지키면서 말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배우들도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들에 알아서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게 누군가. =(웃음) 이를테면, <지붕 위의 기병>(1994)을 찍을 때 내 등 뒤로 화분이 하나 있었다. 촬영감독이 말했다. 옆으로 좀 움직여봐! 뒤에 화분이 있잖아! 나는 그걸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네가 저 화분을 옮기면 되잖아! (웃음)
-최근에는 할리우드영화에도 종종 출연해왔다. 프랑스어권 영화와는 작업방식이 어떻게 다르다고 느끼나. =할리우드영화가 아니라 미국 감독들과 일한다고 말하는 게 옳을 거다. 할리우드영화는 <댄 인 러브>(2008) 한편에만 출연해봤다. 그냥 할리우드 주류영화에 출연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둘 사이의 다른점이라. 프랑스영화계에는 진정한 작가(Auteur)들이 존재한다. 창의적이다. 그러나 할리우드는 시스템에 속해 있다. 생각의 방식이 다를 수밖에. 요즘은 프랑스와 할리우드보다도 당신들(아시아인들)이 더 대담하고 정신나간 영화들을 만들고 있다! 서구문화가 아시아로 갔다가 다시 핑퐁처럼 되돌아오는 형국이다. 일본의 구로사와 기요시와 고레다 히로카즈는 정말 멋지다. 중국의 지아장커와 장위엔도. 요즘은 한국영화들을 보고 있다. 나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 (웃음)
-<사랑해, 파리>에서는 스와 노부히로와도 작업했다. 아시아 감독들과 일하는 건 어떤가. 서구 감독들과 접근법이나 애티튜드가 좀 다르지 않은가. =좀더 미묘하다(Subtle). 허우샤오시엔과 <빨간풍선>을 찍은 것은 나에게는 ‘수업’이었다. 진정한 인생 수업. 그는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창조한 공간으로 모두를 초대한다. 그는 아주 꼼꼼하다. 배경이 되는 공간의 냉장고 속에 뭐가 들어 있어야 하는지도 이미 다 결정해놓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놔둔다.
-마술이구먼. =마술 맞다. 뭐가 일어날지 모른다. 촬영에 들어가면 그 장면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게 바로 인생 아닌가. 삶의 순간들이 바로 그러하다.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장면이 끝나면 허우샤오시엔은 아기같이 웃는다. 그건 정말 행복하다. 나눔의 기쁨이라고 할까.
-아기같이 웃는다니. 가장 아기같이 웃는 건 바로 당신이다. 이를테면 레오스 카락스의 <나쁜 피>에서 당신의 웃음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 웃음 같았다. 그걸 기억하는 영화광 출신들이 적지 않다. 특히 남자들. (웃음) =그 때문에 기자회견에서 그 기자가 90년대를 내 황금기라고 했던 거구나. 푸하하하하하. (박장대소)
-신작 이야기 좀 해보자. 올리비에 아사야스와는 <여름의 조각들>에서 처음 작업했다. =내 초기작인 앙드레 테시네의 <랑데뷰>(1985)에서 각본을 썼던 남자가 아사야스였다. 같이 영화 한번 해보자고 했었는데 그가 제안했던 소재가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아서 거절했었다. 아마 <운명>(Les Destinees sentimentales)(2000)이었지.
-나에게 <여름의 조각들>은 매우 프랑스적인 회고로 넘치는 프랑스적 영화다. =나 역시 그런 테마가 좋았다. 여기에는 수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프랑스적 유산, 엄마, 가족, 헤어짐, 피붙이들과의 관계, 모호함, 복잡다단함, 그 모든 질문과 질문들. 나로서는 어떻게든 그 속을 탐험해보고 싶었다. 또한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꼭 일하고 싶었다. 그는 허우샤오시엔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도 있고. 또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 지켜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어땠나. 아사야스는. =그는 언제나 같은 스탭들과 작업한다. 작은 가족 같다. 그래서 약간 소외된 기분으로 일해야만 했는데, 그게 영화를 위해서는 더 좋았다. 왜냐하면 내 역할이 약간 가족으로부터 멀어진 여자니까. 그래서 현장에서의 내 기분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푸하하하하하하. 봐라! 배우들은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지 이용하는 것들이다! (웃음) 그리고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아사야스가 그냥 장면을 흘러가게 내버려둘 때다. 그는 자신이 쓴 텍스트에 매우 충실하려 하지만 촬영 순간에는 모든 걸 열어둔다. 그래서 나의 즉흥적인 연기를 허용했고 그게 참 좋았다. 다만….
-다만? 다만! =(웃음) 편집 과정에서 우리는 장문의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왜냐하면 내 캐릭터가 나오는 장면 하나를 최종본에서 잘라냈거든. 그 장면 없이 그녀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독에게도 결정이란 정말 힘든 일이니까 뭐. 화난 게 아니다. 그냥 나로서는 약간 놀랐을 따름이고 약간의 설명이 필요했을 뿐이다. <여름의 조각들>의 조각들은 매우 진실되고 살아 있다.
-흠. 영화의 편집에 대해서 신경이 쓰이고, 또 감독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감정들은… 지금 첫 번째 감독작을 준비할 예정이라 더 그런 건가 싶은데. =물론. (웃음) 아직은 대본을 쓰기 위해 짬짬이 노트를 하는 정도라 자세히 말할 건 없다. 먼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Copie conforme>를 찍어야 한다. 올해 6∼7월에 촬영에 들어가니까.
-어떤 영화가 될까. =아름다운 대본이다. 일단 세 언어가 나온다. 이탈리아 토스카니에서 찍을 예정이라 이탈리아어가 나오고, 영어와 프랑스어. 영화는 남자와 여자 이야기다. 한 남자 작가와 사랑을 다시 하고 싶어 하는 여자의 흥미진진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고, 또 다름(Difference)에 대한 영화다. 남자는 좀더 이성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하지만 여자는 좀더 감정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키아로스타미는 그것을 매우 미묘한 방식으로 탐구하고 싶어 한다. 아름다운 영화가 될 거다.
-당신은 언제나 흥미진진한 작가들, 더해서 매우 도발적인 작가들과 일해왔다. 당신은 예술적 자극이 그렇게나 고픈가. =각본을 읽으면 자극받고 싶다. 도발받고 싶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영역으로 가고 싶다.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영적이든, 무언가 새로운 것이 일어나야만 한다. 나는 내 자신을 반복하는 건 절대 하고 싶지 않다. 그건 나에게 폭력이나 마찬가지다. 병에 걸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육체적으로도 그건 옳은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매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벅찬 삶이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거 말이다. =일종의 절박함이 내 삶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더더욱 달리고 싶었다. 첫아이를 가졌을 때도 영화를 세편이나 했다니까. 푸하하하하하하하. (박장대소)
-한국 시어머니라면 엄청 구박했을걸. =푸하하하하하하. 하지만 그 시절 나에게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었는걸.
-당신의 에너지를 가장 심하게 소모시킨 영화는 뭐가 있었을까. =<랑데뷰>. 첫 주연작이어서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뛰어들어야 했다. 추웠다.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세계였다. 첫 영화라는 중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완전히 나체가 되어야 했다. 결과는 예측불가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내 자신보다 더 거대했다. 나보다는 영화가 더 중요했다. 스스로를 완전히 바친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퐁네프의 연인들>. 무려 3년 동안,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 채, 반드시 완성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버텼다. 3년간 수많은 다른 영화를 거절해야 했다. 돈도 다 떨어졌다. 그건 여정이었다.
-그 두편뿐만이 아니다. 루이 말의 <데미지>와 키에슬로프스키의 <블루>. 당신의 예술적 페르소나는 자기 파괴적인 여자들이다. =자기 파괴적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 내가 연기한 여자들은 헤어지고, 잃어버리고, 쓰러지고, 내면의 지진을 겪었다. 그것을 통해서 삶을 재건설했다. 우리는 진정한 내면의 지진을 통해 진정한 삶을 만들 수 있다. 바닥에 쓰러진 뒤 두발로 다시 일어서면서 삶의 또 다른 층을 발견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키에슬로프스키의 <블루>에서 마지막 장면 기억나나? 그녀는 거기서 딱 한번 웃을 뿐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한 행복이 있다. 아. 물론 미카엘 하네케는 다르다. 하네케 영화에서는 누구도 절대 행복하지 않다. 하지만 뭐 어때. 하네케는 그 모든 걸 조소할 뿐인걸. 푸하하하하하하하. (박장대소)
-(웃음). 당신이 만들어낸 그녀들을 통해서 당신 역시 행복을 얻나. =연기는 나에게 감정들을 탐험하게 허락한다. 감정의 부조리함을 이해하도록 허락한다. 연기는 어떤 감정을 내 몸과 내 내면을 통해 창조하는 일이고, 촬영이 끝나는 순간에는 그 감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웃음) 그림도 마찬가지다. 나의 손과 붓을 통해서 감정이 피어난다. 하지만 감정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해방된다. 나는 사람들이 감정과 이성을 구분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마음은 감정과 이성의 혼재로 만들어져 있다. 삶은 그렇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