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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를 다시 만난다

희귀한 러시아영화 풍성한 모스필름회고전, 3월31일~4월26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러시아영화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두 남녀가 손을 맞잡고 하늘 어딘가를 가리키는 동상이 등장하는 ‘모스필름’의 로고를 기억할 것이다. 1923년에 설립된 러시아 최대의 영화 스튜디오이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스튜디오로 남은 ‘모스필름 회고전’이 3월31일(화)부터 4월26일(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러시아 몽타주를 대표하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1925)에서부터 최근작인 카렌 샤흐나자로프의 <사라진 제국>(2008, 개막작)까지 모스필름에서 제작했던 총 19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러시아의 채플린, 메드베드킨의 작품들

<새로운 모스크바>

이번 회고전에서는 국내에 상영될 기회가 없었던 작품들이 다수이다. 먼저 관심이 가는 작품들은 러시아 무성영화이다. 영화의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는 듯한 <제3의 소시민>(아브라 룸, 1927)은 1920년대 모스크바 광장 주변의 풍경화이면서도 섬세한 시선의 교환 속에 성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작품이다. 사실적인 일상의 재현 역시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행복>(1934)은 러시아의 찰리 채플린이라 불리는 알렉산더 메드베드킨의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영화사에서 코미디영화만큼 러시아 대중의 사랑을 받은 장르는 찾아보기 힘들다. 알렉산더 메드베드킨의 영화는 이러한 러시아 코미디의 초기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가치를 지닌다. <행복>은 허황된 꿈에 빠진 가난하고 게으른 농부에 관한 러시아 민담을 바탕으로 채플린의 슬랩스틱 코미디에 간헐적으로 멜리에스의 트릭 무비(trick movie)와 버스터 키튼의 스턴트 코미디를 결합시키고 있다.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에 집단 농장이라는 설정을 가미하여 혁명 이후 소비에트 사회의 가치를 녹여내고 있다. 알렉산더 메드베드킨의 유성영화인 <새로운 모스크바>(1938)는 젊은 도시 설계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알렉산더 메드베드킨 특유의 코미디는 여전하지만, 주인공이 설계한 이상적 모스크바의 모습과 현실의 대비 속에 당시 소비에트 사회를 바라보는 날선 관점이 묻어난다.

미하일 칼라토초프와 촬영감독인 세르게이 우루세프스키의 호흡이 돋보이는 <학이 난다>(1957)와 <부치지 못한 편지>(1959)는 흑백 영상의 아름다움을 고이 간직한 작품들이다. <나는 모스크바를 걷는다>(1963)와 <재즈맨>(1983)은 창작 시기는 차이가 나지만, 그간 쉽게 접하지 못했던 러시아 청춘의 삶을 경쾌한 분위기로 담아내고 있다. 특히 러시아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재즈 밴드를 주인공으로 하는 <재즈맨>은 독특한 뮤지컬영화로 관객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또 <죽음이라는 이름의 기사>(2004)는 보리스 세빈코프의 소설(<창백한 말>)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러시아 코스튬 드라마 특유의 웅장함과 색감이 두드러진다. 허무주의적 분위기와 함께 프레임 안팎으로 이동하는 인물의 동선이 인상적이다.

이번 회고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이다. 그의 중편영화인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1960)에서부터 <이반의 어린시절>(1962), <안드레이 류블로프>(1966), <솔라리스>(1972), <잠입자>(1979) 등 5편이 상영된다. 그의 영화에 대해서 구구절절 떠드는 것보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한 장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마비된 소녀가 걸어가는 <잠입자>의 한 장면. 영화의 프레임이 가능하게 한 이 기적의 순간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문득, 1990년대 후반 타르코프스키의 <희생>(미상영작)을 보기 위해(또는 보며 졸기 위해) 몰렸던 그 많던 관객은 어디서 어떤 영화를 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2009년 4월, 참 오랜만에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다시 찾아왔다고 그들에게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