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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영진위 내부, 다시 폭풍 속으로
이영진 사진 오계옥 최성열 2009-03-31

계약직 해고 논란 계기로 투쟁수위 높이는 노조 “더 이상 위원장 지켜보기 힘들다”

“뻐꾸기하려면 알바 써도 돼!” “얼마나 들어먹으려고 그래?” “무능하면 염치라도 있든가!” “100일만 봐달라면서. (그런데 지금 이런 식이면)100년이 가도 안돼!” “선배님들 역할 좀 제대로 해주십시오!”

3월19일 영화진흥위원회 인사위원회에서 터져나온 가시돋친 말들이다. 영진위 인사위원회는 이날 “5월 재계약 대상인 계약직 직원 5명 일괄 해고”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사위원회는 처음부터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한인철 지부장과 윤하 사무국장을 비롯해 20여명의 영진위 노동조합 노조원들은 인사위원회가 열리기 전부터 대회의실 입구에 모여 “무능경영 자행하는 김병재 국장 각성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인사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인사위원들을 불러모아 계약직원들의 해고를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승인해줄 것을 요청한” 김병재 사무국장에 대한 노조의 불만은 회의가 개최되자 더욱 거세졌다. 노조의 제지에도 김병재 사무국장은 해당 안건에 대한 표결을 시도하려 들었고, 이는 노조원들을 더욱 자극했다. “네 맘대로 할 거면 나가라”는 노조원들의 폭언이 쏟아졌고, 결국 인사위원회는 시작한 지 10여분 만에 끝이 났다. 김병재 사무국장이 비난의 화살을 맞았으나 노조의 분노는 실은 최종 인사권자이자 결정권자인 영진위 위원장을 향한 것이었다.

“왜 아직도 마땅한 진흥책 못 내놓나”

이는 연일 투쟁 수위를 높이는 영진위 노조의 행보에서도 충분히 확인된다. 지난해 12월 강한섭 영진위 위원장의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조직개편에 제동을 걸고 나선 때에는 ‘합의’를 강조했다. 이번엔 다르다. 영진위 노조는 인사위원회가 열린 다음날인 3월20일 곧바로 총회를 열고, 강한섭 위원장과 김병재 사무국장의 퇴진 운동을 펼치기로 뜻을 모았다. 3월24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영진위 기관 정상화를 위한 조합원 결의대회까지 열었고, 3월26일 현재까지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영진위 노조는 3월24일 ‘영화인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에서 “현실성없는 탁상공론을 되풀이하는 강한섭 위원장을 더이상 지켜보기 힘들다. 또한 부임 7개월 동안 업무 파악도 채 끝내지 못해 영진위 내부는 물론 대외의 공식적인 자리에서까지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김병재 사무국장 역시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고 질타했다. 근거없는 해고에 대한 문제제기로 그치지 않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영진위 노조는 지난 10개월 동안 강 위원장의 실책을 일일이 들추고 있다. 지난해에는 기관장으로서 강 위원장이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영진위의 위신을 실추시켰다는 비난에서 멈춰섰으나 이번엔 4기 위원회가 지금까지 “마땅한 진흥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책임을 묻고 있다. 영진위 노조는 이 뿐 아니라 강 위원장의 “독단적인 일처리”로 인해 “영진위의 의사결정 과정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면서 “최고 의결기구인 9인 위원회조차 주요 사안들을 논의가 아닌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논란이 된 독립영화 지원 축소나 시네마테크 공모제 시행 등과 같은 중요한 사안” 결정에서도 강 위원장은 위원들과의 충분한 협의를 나누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들이 강 위원장에게 최근 질의서를 통해 항의의 뜻을 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영진위 위원은 “강 위원장의 태도를 보면 영진위가 합의기구임을 망각한 것 같다”며 “혹시 자신이 다른 위원들을 직접 임명했다고 믿는 것 아닌가 싶다”고 쓴소리를 뱉었다.

영진위 노조가 아니라도 강 위원장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는 높다. 한 내부 관계자는 “위원장이 바깥에서 하는 말과 안에서 하는 말이 다르다”면서 “독립영화 유통지원 사업만 해도 바깥에서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내년에 다시 살리겠다고 해놓고 ‘복구 불가 사업인데 왜 그런 말이 나오느냐’며 해당 사업팀에 따져물었다”고 전한다. 그는 또한 중장기 계획이 제때 마련되지 않은 것도 강 위원장의 ‘원칙없음’과 무관하지 않다면서 “OOO 사업 민영화 추진의 경우 최근 갑작스럽게 강 위원장이 검토하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다는 담당 직원의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영진위와 관련된 한 영화인도 “강 위원장 체제에서 새로 뽑한 팀장들의 경우 눈치보기 바쁜데다 강 위원장은 비선 조직을 통해서만 사업을 추진해왔다”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목적의 소위원회를 모두 없앴는데 그 부정적인 결과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상한 소문, 몇가지 뇌관

영진위 노조가 강 위원장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한편에선 강 위원장의 조기 퇴진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성과를 내지 못한 기관장은 사퇴시킬 것”이라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최근 발언과 맞물리며 이같은 예측은 파장을 더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 5월 평가 대상 기관에 포함되어 있다. 유 장관은 경영 수지뿐만 아니라 기관장의 “리더십, 정책 추진 의지, 노사문제, 대국민서비스” 등 전반적인 항목에 대한 평가를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과 제도에 따라 철저하게 평가하겠다는 뜻이지 특정 기관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영화계 안팎에선 벌써부터 “강 위원장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발표한다던 시점이 한달이 지났는데도 정부와 영진위의 한국영화 중장기 진흥계획이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것 또한 이상한 일”이라는 의문도 적지 않다.

강 위원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옷을 벗느냐 마느냐보다 더욱 중요한 게 있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지 한국영화 정책의 공백 상태가 오랫동안 진행된다는 것이다. 한 영진위 위원은 “영진위라는 기구가 제때 제대로 안 돌아가면 고스란히 그 피해가 영화인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면서 “지금 상황에선 영진위가 과연 필요한 기구인가 하는 시큰둥한 반응에 뭐라고 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영진위 한 관계자는 “새로 시행한 OOOO OOOO 사업의 경우 곧 결과가 발표될 텐데 과거와 달리 여기저기서 불만들이 터져나올 것”이라면서 “이 사업의 경우 예산 확보 과정에서 적절한 절차를 밟지 않고 강 위원장이 밀어붙였는데 이 또한 추후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도 여기저기 도사린 뇌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영진위는 과연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으로선 쉽게 뭐라 말할 수 없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