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숨기고픈 과거는 있을 거다. 상대가 사랑스럽지만 까탈스러운 연인이라면 더더욱.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을 보면서 비로소 이 공연이, 아니, 원작인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부터 사랑하는 이에게 차마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 한 조각, 그 엽기적이면서도 예민한 정수를 다룬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생애 처음 사랑을 느낀 상대가 황대우처럼 쪼잔하고 의기소침하다면 허벅지의 반점 하나라도 철저하게 숨기고 싶지 않을까. 게다가 그 나이에 키스 한번 못해본 남자라니. 우리의 과오가 이미나의 그것만큼 살벌하지 않더라도 그에겐 비소보다 치명적인 독극물이 될 게 분명하다. 예컨대 옛 남자와 우연히 만나 술이라도 한잔 꺾었다면, 괜한 신경전이 될까 얼버무리려던 기색을 그가 눈치라도 챘다면.
소심한 애인을 둔 여자들이여, 그 어떤 비밀이라도 트렁크에 싣고 야산에 올라 깊숙이 파묻어버리라.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을 권하는 이 뮤지컬은 엇박의 리듬감을 타고났다. 키스할 때 대놓고 혀를 찾는 ‘달콤, 살벌한’ 남녀의 로맨스나 가장 로맨틱한 순간 슬금슬금 괴기스러워지는 뮤지컬 넘버들이 그렇다. 특히 발랄한 장미의 솔로곡 <나도 미나만큼>을, 홍규와 미나의 오싹한 듀엣곡 <나는 수박이 싫어>로 이어받은 다음, 미나와 장미, 대우가 애교스럽게 주고받는 <여성 전용>으로 바통 터치해 다시 분위기를 뒤집는 센스란! 화려한 공연을 좋아한다면 구미에 맞지 않겠지만 영화 버전이 그랬듯 앙큼한 유머는 백발백중 객석을 낄낄거리게 만든다. 정식 오픈한 지 얼마 안된 소극장 창작뮤지컬이라는 점을 감안하다면 성공적인 첫걸음이라 평해도 좋을 것이다.
3월15일 오후 6시 공연을 관람했는데 이날의 캐스팅은 김재범-방진의였다. <공길전>으로 주목받은 김재범은 하얀 얼굴에 팬 보조개처럼 느끼하지 않게 귀여웠고, <컴퍼니>에서도 눈에 띠었던 방진의는 4차원 여주인공에 착 달라붙은 듯 어울렸다. 같은 역할로 신성록과 손현정이 더블캐스팅됐으니 참고하시길. 다만, 개인적인 고통이었다면 “나도 미나만큼!”을 외치는 장미의 이름이 너무 자주 불린다는 점이랄까. 그나마 백장미니까 다행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