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1958년, 서독의 노이슈타트. 전차에서 내린 소년이 구토를 한다. 열이 올라 붉어진 얼굴로 울던 소년(데이비드 크로스)을 지나가던 여인(케이트 윈슬럿)이 집까지 바래다준다. 성홍열에 걸려 3개월을 누워지낸 소년은 감사를 표하러 여인을 찾아간다. 둘은 곧 연인 관계가 된다. 성숙한 손에 이끌려 첫 경험을 한 15살 소년은 36살 여인에게 의식처럼 책을 읽어준다. 그러나 찬란한 여름 한철을 뜨겁게 사랑한 소년을, 여인은 말없이 떠난다. 이유를 모른 채 버림받은 소년은 법대에 진학하고, 전범을 다루는 법정에서 피고로 선 여인을 다시 만난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불친절하다. 시간은 뒤섞였고 역사는 개인사 속에 종종 자취를 감춘다. 영화는 실마리를 주는 것도 주저한다. 마이클과 한나라는 둘의 이름도 몇번의 섹스 뒤에야 알려준다. 한나가 떠난 이유와 마이클이 법정에서 중요한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이유 역시 서서히 드러난다. 스티븐 달드리, 데이비드 헤어, 케이트 윈슬럿이라는 3박자가 만든 이 수작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원작에 대한 <타임>의 평과 정확히 일치한다. “교묘하다. 냉정하게 도덕적 질문을 들이대면서 30대 여성과 10대 소년의 음란한 장면을 묘사하며, 동시에 우아한 스타일과 문학적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학살의 끔찍한 기억은 고스란히 묻고 답하기에 맡긴 채 영화는 보여주는 것보다 더 직설적인 방법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행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그때그때 자신에게 가장 옳다고 판단한 선택을 따른 한나는, 도리어 판사에게 “무엇이 잘못이었냐고” 되묻는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죄인과 법조인으로 나뉜 세계에서 정답없는 질문은 충돌을 계속한다. 과거를 통해 배운 것이 있는가? 모든 것을 다 가진 지금 과거에서 배울 것이 없다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대답과 모든 것을 잃고도 배운 것을 말하는 친위대 경비의 대답은 돌이킬 수 없음을 말하기에 같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논외로 이 영화가 주목받을 확실한 이유는, 소설에서 “짐승 같다”고 지탄받은 한나와 마이클의 관계일 것이다. 요철이 분명한 여인의 몸을 섬세하게 보살피는 마이클에게 한나는 수동적이면서 지배적인 연인이다. 케이트 윈슬럿은 오스카 트로피가 아깝지 않게 훌륭하다. 그 아름다운 연기 덕분에 찌푸린 미간과 앙다문 입술에 드리워진 자괴감과 허망함은 스크린을 너머 실재하는 감정으로 다가온다. 어른이 된 마이클(레이프 파인즈)이 어깨를 들썩일 때 어떤 이는 눈시울을 붉힐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다시 개인에게 바통을 넘긴다. “내가 15살 때”로 시작하는 전후 세대의 부채는 그렇게 구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