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상반기 영화계 최대 이슈는 아무래도 독립다큐멘터리 <워낭소리>의 돌풍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독립다큐멘터리 전반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질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워낭소리>가 내용과 형식 면에서 독립다큐멘터리의 가장 ‘효율적인’ 모델이라고 보는 일부의 획일적인 견해도 우려스럽다. 그런 맥락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열리는 인디다큐페스티발 2009는 하나로 수렴될 수 없는 독립다큐멘터리의 다양한 목소리를 목도할 소중한 기회다(3월26일~4월1일, 인디스페이스와 삼일로 창고극장, 자세한 사항은 참조). 총 35편이 상영될 이번 영화제에는 국내 신작전과 대만 다큐멘터리 특별전뿐만 아니라 신진 작가 지원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시장을 다시 생각하는 포럼, 감독, 프로그래머, 관객이 참여하는 토론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됐다. 무엇보다 올해는 이미 몇몇 작품들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감독들 외에도 새로운 이름들의 등장을 눈여겨볼 만하다.
<식코> 연상케 하는 <달동네에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사회 어느 구석에 그저 카메라 렌즈만 들이대도 정치가 되고 이야기가 나온다. 그게 독립다큐멘터리로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명백하게 발화할 더없이 적절한 기회이기도 하지만, 소재가 아닌 태도 혹은 화법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냉철한 사유가 요구되는 때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해 영화제에서 상영될 작품들(이 글은 인디다큐페스티발 2009에서 첫 상영되는 14편의 영화들을 중심으로 한다)은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 논리에 의해 온전한 인간으로, 터전으로 호명되지 못하며 강제로 유령화 되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달리 말해 여기에는 ‘존재 가치를 무시당하는 존재’의 슬픔과 분노가 있으며, 각 영화들이 이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시스템의 부조리를 전면화하기보다는 그 존재의 넋두리를 최대한 끌어안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 가장 윤리적인지는 재고할 필요가 있지만, 일단 이 영화들이 지금 골몰하는 건 대상의 기억, 삶, 눈물이 찍는 자의 삶과 어떻게 접점을 찾을 수 있는지의 문제인 것 같다.
개막작으로는 세편의 단편,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김경만), <잊지 않을 거야>(영), <철탑, 2008년 2월 25일 박현상씨>(변해원)가 함께 상영된다. 이들 중 <잊지 않을 거야>는 더이상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재개발의 폭력성을 시적인 구성으로 담아내는데, 투쟁의 구호를 대신하는 사적인 기억의 내레이션, 평화로운 마을의 현실과 현실성을 상실한 흉측한 폐허의 이미지를 고요하게 충돌시키는 숏의 배치는 마음을 울린다. 기억의 힘이 발휘되는 또 다른 영화는 <기억하는 공간>(김희철)으로, 옛 국가안전기획부 건물이었던 공간의 철거를 응시하며, 여전히 그곳을 떠도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기억을 기록한다. 화면은 이제는 텅 빈, 영원한 사라짐을 앞두고 역사의 흔적으로만 남을 건물의 마지막을 담지만, 고문받던 순간을 증언하는 생존자들의 육성이 그 위를 흐를 때, 기억은 공간의 물질성을 넘어 끊임없이 돌아온다.
제도로부터 배제되고 경계에 선 존재들의 삶은 여전히 이 세계의 실재다. <달동네에는 바다가 있다>(한검주)는 부산 남부민동 달동네에 위치한 남부민의원의 의사들과 병원을 찾는 달동네 주민들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는 <식코>(마이클 무어)의 재앙이 더이상 외국의 사례가 아님을 주장한다. 최근 부산의 ‘산토리니’ 따위로 미화된 달동네 풍경을 이루는 개별 가정들의 빈곤한 현실을 환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편, <rootless>(오원환)는 오늘날의 대표적인 경계인이라고 할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 다른 국가로의 이주를 결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경계에 선 인생>(정창영)은 남한에서 오랜 장기수 생활을 하다 석방된 노촌 이구영 선생의 말년을 담는다. 여기에는 끊임없이 자신의 부끄러운 개인사를 겹쳐두려는 감독의 노력이 있는데, 두 삶의 병치가 영화의 완성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의 문제와는 별개로, 그것이 노촌 선생의 슬픔과 진정으로 공명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감독의 믿음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