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독립영화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3월13일 한국독립영화협회와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으로 ‘아시아영화펀드 쇼케이스’(이하 ACF 쇼케이스)를 개최한 것. 참고로 아시아영화펀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독립영화들을 대상으로 제작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에 상영한 14편 모두 아시아영화펀드 지원 완성작이다. 그중에서도 파누 아리 감독이 연출한 <개종자>는 타이의 종교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방콕의 한 잡지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준이 모슬렘 남자와 결혼하면서 이슬람교로 개종한다. 타이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라는 그녀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파누 아리 감독은 “종교문제에서 나아가 그들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동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영화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종교 분쟁을 주요 소재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동의한다. 종교 분쟁은 현재 동남아시아 사회의 가장 큰 화두다. 다인종 사회인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전체 인구 중 95%가 불교도인 타이에서도 3%밖에 안되는 소수의 모슬렘이 분리주의 운동을 벌이는 등 동남아시아 전체적으로 종교 분쟁 문제는 심각하다. 참고로 나는 모슬렘이다. 9·11은 전세계적으로 모슬렘에 대한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왜곡시켰다. 그래서 <개종자>는 주인공인 ‘준’의 이야기를 통해 모슬렘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잡으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종교문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종자>는 서사로 풀어도 재미있는 소재인데 다큐멘터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타이의 젊은이들은 종교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드라마 구조를 통해 재미있게 보여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관객에게 문제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소재(종교)를 있는 그대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선택했다.
-지난 3월14일 ACF 쇼케이스에서 상영했다. 한국 관객의 반응은 어떤가. =대부분이 여성 관객이었다. 국적이 다른 데도 주인공 준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공감하더라.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로부터 지원을 받아 완성했다. =우연히 부산국제영화제에 제작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부산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전체 제작비의 70%이고, 나머지는 사비를 털거나 친구들에게 빌렸다. 아시아영화펀드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다.
-현재 타이의 독립영화 지원제도가 궁금하다. =타이 정부는 주로 독립영화보다 대작영화를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그래서 감독들이 각자 알아서 제작비를 충당한다.
-왜 그런가. 그리고 타이 독립영화인들 사이에서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없나. =아직 사회적으로 독립영화의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지원제도 관련 법안 요청서를 작성해 정부 관련 부처에 제출했지만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번 ACF 쇼케이스에 함께 참가한 동시대의 다른 아시아 독립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어느 나라나 독립영화는 제작환경이 열악하고, 극장에 관객이 별로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동남아시아 영화는 종교·정치·경제·사회문제에 집중하는데 반해 한국과 일본은 개인의 문제를 많이 다룬다는 거다. 한 인간의 삶을 진솔하게 그리면서 그 사람을 둘러싼 사회를 보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 =현재 준비 중인 작품은 이슬람교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모슬렘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작품을 준비하다 보니 두개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하나는 타이의 젊은 친구들이 이런 소재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슬람 음악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사회적인 분위기다. 과연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이 고난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나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사실적으로 이야기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
-앞으로 다큐멘터리만 고집할 생각인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적이고 진솔한지가 중요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균형있게 바라보고, 진실되게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에 집중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