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1일, <씨네21> 연재 중인 ‘박중훈 스토리’ 관련 기사가 갑작스레 각 인터넷 포털 메인 화면을 장식했다. 라는 제목으로 694호에 실린 <바이오맨> 촬영 뒷이야기였는데, 여러 매체 기사들을 통해 언급된 부분은 당시 박중훈이 상대배우 신미아에게 욕설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뒤늦게나마 백배사죄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불과 반나절 동안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내용의 기사들이 30여개 정도 인터넷에 떴고, 신미아라는 이름은 하루 정도 다음과 네이버에서 검색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본지 연재기사를 인용해 ‘박중훈, 여배우에게 심한 욕설 내뱉은 이유는?’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가장 먼저 작성한 곳은 바로 ‘한국아이닷컴’이었다. 작성기자 이름은 명시돼 있지 않았고 ‘한국아이닷컴 뉴스부’라고만 돼 있었다.
문제는 ‘한국아이닷컴’이 가장 먼저 기사를 작성하면서 정확하게 인용을 하지 않았고, 이후 다른 매체들이 그 기사를 마치 영화사나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전체 발송한 보도메일을 인용하듯 무턱대고 베꼈다는 데 있다. “신미아가 호텔에 맡겨둔 물건을 찾아야 한다고 늦장을 부리다가 스탭 절반이 비행기를 놓쳤다. 그러니 상대배우가 더 미워졌다. 그렇게 늦은 채로 홍콩에 온 건데, 차 안에서 대화장면을 촬영할 때는 신미아가 크게 웃고 대화하고 그런 장면들을 잘 못하는 거다”라는 게 연재 기사 원래 내용인데, ‘한국아이닷컴’은 임의적으로 단어를 새로 삽입하고 축약하면서 같은 내용을 “신미아 때문에 스태프 절반이 비행기를 놓쳐 촬영 일정이 지체된데다, 계속 어설픈 연기까지 하기에 젊은 혈기를 못 참고 잠깐 얘기 좀 하자며 불러내 심하게 욕을 했다”고 썼다.
<프리미어>와 인터뷰한 권상우도 피해 봐
명확하게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OO 때문에’라든가 ‘어설픈 연기까지’라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았을뿐더러, 무엇보다 제법 긴 문장을 듬성듬성 잘라내어 큰따옴표까지 쓰면서 제멋대로 인용하는 건 절대 안되는 일이다. 서로 배치되는 영역인 ‘인용’과 ‘주관’을 편의적으로 섞어 만들어낸 자극적인 기사일 뿐이다. ‘그게 뭐 그 내용 아닌가’라고 반문하는 것은 기사 작성상의 오류를 시인하고 난 다음에 해야 할 일이다. 정 그런 표현들을 쓰고 싶으면 인용 자체는 제대로 하되 기자 자신의 주관을 담아 다른 문장으로 작성해야 할 일이다.
‘한국아이닷컴’에서 최초 작성한 기사는 단순한 실수로 넘긴다고 해도, 이후 그 기사를 베껴 쓴 매체들은 더 가관이었다. 바로 뒤이어 ‘조선닷컴’이 “배우 박중훈이 20년 전 같은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고 한국아이닷컴이 11일 보도했다”고 온라인 기사를 띄운 이후 ‘박중훈, 서울대 출신 신미아에게 욕설, 사과’(프런티어타임스)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학교명을 제목에까지 언급하거나, 굳이 현재 시점의 얘기가 아니라 연재 과정의 일부분임에도 ‘박중훈, 험한 말한 신미아에게 20년 지난 뒤 사과하는 이유는?’(아이비타임즈)라는 식으로 ‘왜 지금 와서 이러나?’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도 있었다.
실제로 기자는 어처구니없게도 “왜 박중훈씨가 이제 와서 기자회견이 아닌 형태로 <씨네21>을 통해 그런 얘기를 발표했냐”는 취재성 전화를 받기도 했다. 문제는 최초 기사 이후 잡지 원문을 확인하고 쓴 기자가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연재 내용 중 당시 열악했던 한국영화계의 상황에 대한 소회라든가, 상대 배우를 향한 진심어린 사과는 증발한 채 그렇게 부정적인 뉘앙스를 띤 문구만 계속 유포된 것이다. 실제로 해당 기사들에 달려 있는 댓글은 당사자들을 향한 부정적인 댓글 일색이었다.
이번 일은 그보다 불과 한주 앞서 있었던 권상우 관련 기사와도 맥락을 함께한다. ‘쿠키뉴스’ 등은 권상우가 영화지 <프리미어>와 나눈 인터뷰에서 특정 대답만을 빼내 “어릴 때부터 한국 싫었다”라는 제목에 “권상우 ‘직설화법’ 인터뷰 파문”이라는 부제의 기사를 작성했다. 이미 4년 전 이른바 ‘일본우월’ 발언 등으로 특유의 솔직함이 네티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최근 특정 방송 프로그램을 임의로 펑크내 문제가 되기도 했던 권상우로서는 쉽게 말해 ‘딱 욕먹기 좋은’ 기사였다.
역시 같은 내용으로 수십개의 기사를 양산한 여러 매체들은 역시 큰따옴표를 이용해 기사를 임의적으로 인용했다. 인용 기사의 인용은 무조건 정확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싫었어요”와 “한국 싫었다”라는 문장은 뉘앙스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역시 잘못 인용한 내용을 큰따옴표를 써선 안될 일이다. 해당 인터뷰를 진행한 신기주 기자는 “인터뷰 내용이 일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악의적으로 왜곡되거나 과장되고, 네티즌 사이에선 진심이 다르게 이해되는 현실이 참담하다”며 ”몇몇 발언만을 자의적으로 발췌해서 의미를 곡해하는 몇몇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보충취재는 없고 거의 도둑질 수준”
이처럼 인터넷 포털 연예 파트를 채운 대부분의 기사들은 무분별한 인용과 임의적인 가공이 난무하고 있다. <헤럴드경제>의 이형석 기자는 “전에는 최초 기사가 뜨면 그걸 참고해 보충 취재를 하는 게 관행이었는데 최근의 기사 베껴 쓰기는 거의 도둑질에 가까운 수준”이라며 “사실 확인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너무 많고, 워낙 속보 경쟁이 심해서 잘못된 이후 보도가 있어도 일일이 대응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미 짧은 시간 안에 화제가 되고 검색어 순위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는 ‘폭풍’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정정 보도를 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기자는 “요즘 인터넷 매체 연예 뉴스들을 보면 일단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지르고 보는 식”이라며 “일부 매체들은 공공연히 기자들에게 포털 메인에 뜰 만한 뉴스를 생산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으로 안다”고도 덧붙였다. 그만큼 ‘매체력’ 혹은 ‘매체 노출’이라는 목표 앞에 검증과 확인이라는 ‘기본’은 실종돼가고 있다. 신기주 기자는 “(일부 인터넷 매체들의) 발췌와 왜곡과 과장과 아전인수 속에서 인터뷰의 진의는 일그러지고 말았다”고 토로했으며 이형석 기자 역시 “이런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지면매체의 쇠퇴로 언론사마다 인터넷 매체 사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며 “이러한 과당경쟁이 암묵적으로 갈수록 더 조장되는 것 같은데, 현 상황에서 더 악화되면 악화됐지 개선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처럼 각 인터넷 포털 서비스의 메인을 차지한 여러 자극적인 제목들의 경쟁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최근의 여러 사례를 보듯 이제는 정말 단순히 자극적 제목, 앞뒤 말 자르기 등을 넘어 임의대로 인용하거나, 무조건 닥치는 대로 베껴 쓰고 보는 ‘뉴스 한탕주의’의 시대가 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