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자연씨의 전 매니저가 3월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중국음식점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부모님까지 걱정하시더라고요. 매니저란 사람들이 왜 그런 나쁜 짓을 하냐면서….” 매니지먼트 업체 A의 L 대표가 내뿜는 한숨에는 요즘 매니지먼트 업계 종사자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장자연의 안타까운 사망 사건 이후 매니지먼트 업계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꽂히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기형적인 수익구조에 짓눌려 있는 와중 ‘노예계약’이라 불리는 불공정 계약 사건, 휴대폰 복제 파문 등 잇단 악재를 겪었는데 이번 사건까지 겹치니 죽을 맛이라고 이들은 전한다. L 대표는 “나는 여성이라 그래도 덜한데 한창 일하는 남성 매니저들은 더 힘들지 모른다. 주위의 눈총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항상 만나서 일해야 하는 어린 여배우들의 시선까지 의식해야 하잖냐”고 말한다. 남성인 B 매니지먼트의 J 팀장은 “여성 연기자와 일하는 데 큰 불편은 없다”고 말하지만 “언론이 이 사건을 흥미 위주로 다루는 탓에 파장이 커지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몇몇 관계자들과 통화해본 결과, 이들은 이 사건에 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모호해서다. 업계에서 고참급에 속하는 C 업체의 J 대표는 “과거에는 성상납이나 뇌물공여 같은 게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기업 마인드가 득세해온 최근 들어서는 그런 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데 ‘우리는 깨끗해요’라고 외치면 누가 믿어주겠나”라고 분위기를 전한다. D 업체의 K 실장도 “‘대다수 매니지먼트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보다 그저 할 일을 성실하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말한다.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의 김길호 사무국장 또한 “이 사건에 대한 매니지먼트협회 차원의 입장 표명은 장자연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 말고는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가장 바라는 쪽도 바로 이들이다. “차라리 성상납을 받았다면 그게 누구누구고, 뇌물을 받았다면 누가 얼마씩 받았는지 모두 까발려졌으면 좋겠다”는 J 팀장의 바람은 대다수 매니지먼트 종사자들이 공유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신인 연예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대해 이들은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상당수가 이 사건의 본질을 ‘미꾸라지 한두 마리가 흙탕물을 일으킨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최문순 의원 등이 준비 중인 이른바 ‘장자연 법’이나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마련하는 여러 방안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김길호 사무국장은 “대다수 건전한 매니지먼트 업체들은 한류를 만들어내는 등 많은 공헌을 했는데,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세우려고만 하니 아쉬움이 많다”면서 영화진흥법 같은 진흥책을 마련해줬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했다.
하지만 매니지먼트 종사자들이 받는 온갖 의심의 눈초리를 진정으로 떨치기 위해서는 대책이 필요한 건 확실하다. 그건 매니지먼트업의 등록제일 수도 있고, 표준계약서 의무화일 수도 있으며, 연예인 노조의 활동 강화일 수도 있다. 매니지먼트사가 신인에게 거액을 미리 투자하고 나중에 이를 회수하는 현재의 시스템 또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에 앞서 가장 중요한 점은 매니지먼트 업계를 포함한 각계가 빨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게 장자연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만드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