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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시에 숨겨진 상냥함
이다혜 2009-03-19

<이십억 광년의 고독> 다니카와 &#49804;타로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친구에게 권하고 싶다 지수 ★★★★ 다른 시집도 읽고 싶다 지수 ★★★★

“인류는 작은 공 위에서/ 자고 일어나고 그리고 일하며/ 때로는 화성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화성인은 작은 공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혹은 네리리 하고 키르르 하고 하라라 하고 있는지)/ 그러나 때때로 지구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것은 확실한 것이다//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우주는 점점 팽창해간다/ 따라서 모두는 불안하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 나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이십억 광년의 고독>

일본에서도 시만 써서 먹고살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그 일본에서 직업적으로 시 써서 먹고사는 시인이 딱 한명 있는데, 그 인물이 바로 다니카와 &#49804;타로라고 한다. 스물한살에 낸 첫 시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래 거의 모든 출판물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단다(참고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낸 <이십억 광년의 고독>은 동명의 첫 시집을 포함한 대표작을 모은 시선집이다).

‘잘 팔렸다’는 말부터 불쑥 꺼내 시인을 소개하는 우를 범했지만, 시가 좋다 한들 늘어놓을 면이 부족하니 별 도리가 없다. 다니카와는 <우주소년 아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제가를 작사했고, 많은 뮤지션들이 그의 시를 가사로 가져다 썼다. 우주의 스케일로 고독을 느끼고, 우주의 스케일로 슬퍼하는 그의 시구를 입 속에서 우물거리면 캄캄한 밤의 귀갓길도 까무룩 잠에 빠져드는 오후의 뜨끈한 햇살도 다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으로 녹아내린다. 일본이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에는 화성을 노래했고, 한편으로는 반전가요로 유명한 노랫말이 된 시를 쓰기도 했으나, 그의 시를 정치로 읽는 건 올바른 독법은 아닐 테다. 유일하게 필요한 독법이 있다면, 그가 어린이를 위해 번역하고 쓴 동화책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노래하듯 그냥 시를 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내일 아침에 또 신문이 온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그는 울고 싶어졌다/ 어디 먼 높은 산에서/ 커다란 독수리가 날아와/ 그 날개로 안아줄 것 같은 기분/ 아아, 내일 아침에도 신문을 읽자/ 새 잉크의 냄새를 맡으면서// 신문에 써 있는 것이라면/ 어떤 내용이라도 그는 무척 좋아한다/ 살인사건을 옛날 이야기처럼 읽고/ 주가 상승을 낯간지러워하고/ 쿠데타에 얼굴 붉어지면서/ 그는 세계의 끝없는 잔인함을/ 변기에 앉아 마음껏 맛본다.”-<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