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90년대 비디오 게임 원작 B급영화의 경지 <드래곤볼 에볼루션>
김도훈 2009-03-18

synopsis 무공을 지닌 고등학생 손오공(저스틴 채트윈)은 2천년 동안 봉인된 악마 피콜로의 부활로 할아버지를 잃는다. 할아버지가 남긴 유언은 지구 곳곳에 흩어진 7개의 드래곤볼을 모아서 피콜로의 음모를 막으라는 것. 손오공의 여정에는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여자를 밝히는 무천도사(주윤발), 천부적인 기계적 재능으로 드래곤볼 탐지기를 발명한 부르마(에미 로섬), 개과천선한 날강도 야무치(박준형), 손오공의 짝사랑 치치(제이미 정)가 합류한다. 그들은 이제 7개의 드래곤볼을 모아 지구를 지배하려는 피콜로보다 먼저 드래곤볼을 찾아내야만 한다.

도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은 20세기 최고의 문화 상품 중 하나다. 1984년 일본의 <주간소년 점프>에서 연재를 시작한 <드래곤볼>은 일본에서 약 2억부, 전세계적으로는 3억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90년대부터 일본 망가를 적극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한 북미와 프랑스에서도 <드래곤볼>은 일본 문화의 첨병이었다. <드래곤볼>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프랑스 방영 시 9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미국에서 <드래곤볼>의 비디오 판매량은 2천만장을 넘어섰다. 미국 아이들에게 가장 유명한 아시아인은 ‘브루스 리’가 아니라 ‘고쿠(손오공의 미국식 이름)’다. 이십세기 폭스가 1억달러의 제작비를 아낌없이 투여한 이유는 이만하면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드래곤볼>이 영화화하기에 의외로 까다로운 콘텐츠라는 거다. 수십권에 이르는 <드래곤볼> 시리즈는 도리야마 아키라가 창조한 가상의 우주 속에서 빛을 발하는 만화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실사로 만드는 순간 원작의 아우라는 살아남지 못하거나 농담의 수준이 된다. 생각해보라. 대체 누가 손오공을 연기할 것인가. 콧구멍이 없는 빡빡머리 크리링은 CG로 만들 셈인가. 제임스 왕의 <드래곤볼>이 ‘에볼루션’이라는 부제를 굳이 단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오리지널을 신실하게 재현하는 게 불가능하니 ‘진화’라는 이름을 붙여 입맛대로 각색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진화에 걸맞은 각색도 여기에는 없다. 영화는 그저 무성의하다. 평범한 10대 소년 오공의 성장기와 <반지의 제왕>식 퀘스트물 사이를 설렁설렁 헤매던 이야기는 결국 90년대 비디오 게임 원작 B급영화의 경지에 이른다. 원작의 향취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저스틴 채트윈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손오공으로 보이지 않는다. 주윤발은 <방탄승> 이후 가장 겸연쩍고 애처롭다.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미네소타주의 간이음식점 요리사가 도쿄의 고급 일식집 솜씨를 재현하겠다며 홍콩식 생선절임으로 만든 스시를 내놓은 꼴이다. 그런 거 먹어본 적 없다만 분명히 <드래곤볼 에볼루션> 같은 맛이 날 거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