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칼럼에 오타가 하나 났다. 사람들이 구매행위를 안 하면 무슨 수로 내수진작을 하겠냐는 뜻으로 “일 하는 시간은 안 줄이고 월급만 깎으면 대체 뭔 시간에 뭔 돈으로 사라고” 울부짖었는데, “…살라고”로 잘못 나갔다. 음, 나름 의미있긴 하다. 사지 못하면 살지 못하니깐. 우리의 눈 큰 경제대통령께서도 옥중에서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구매력을 정부가 어떻게 끌어올리느냐에 따라서, 잘못하면 경기침체가 2011년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하셨다. “기준금리를 낮추더라도 유동성 함정에 빠질수 있다”(돈을 뿌려도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다) 등 약이 되는 말씀도 많이 하셨는데, 내가 소화 가능한 대목은 이 부분뿐이라. 쩝.
소화기 약한 판사들이 신영철 대법관의 ‘관심과 애정’ 표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시끄럽다. 신영철 대법관은 물러나든 쫓겨나든 거취를 정하겠지만, 나는 그분이 그냥 떠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법대로 해야지. 직권남용에다 정치적 중립의무 위배 여부도 따져야지. 안 그러면 섭하지.
본인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할 의도가 없는 “통상적인 사법행정”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당하는 사람이 부당하게 느끼면 부당한 거다. 마치 성추행 가해자가 ‘통상적인 사교활동’이라며 자신의 범죄 행위를 옹호하는 것 같다. 게다가 그 행위가 한번에 그치지 않고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았다.
촛불집회 관련 재판 몰아주기 배당에서 출발해, 관련 피고인의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기각하도록 종용하고, (가능한 한 잡아넣도록) 영장 기각 사유를 바꾸게 하고, 나아가 양형과 재판 속도까지 간섭했다. 시위 참가자의 보석을 허가한 판사는 여러 차례 불려가 ‘각별한 총애’를 받기도 했다. 이게 다 판사들에 대한 행정책임자의 ‘관심과 애정’이었다고 해도 이메일과 전화는 물론 밥먹는 자리까지 쫓아다닌 것은 스토킹에 버금간다.
사실 판사들도 기간이 길어서 그렇지 계약직이다. 10년까지만 보장되고 그 뒤에는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거쳐 계약연장(연임) 여부가 결정된다. 자신에 대한 인사권을 쥔(혹은 쥘) 사람이 자신의 업무에 대해 정색을 하고 이래라저래라 하는데 아무리 그 표현이 우회적이라 해도 한귀로 듣고 넘길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판사도 사람이다. 물론 판사들은 누가 시켜서 일하는 게 아니라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일하지만 업무의 중대성 때문에라도 사소한 자극에 ‘오방’ 스트레스받을 수밖에 없단 말이다. 갑자기 내 보스가 막 사랑스러워지려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