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케이(권상우)에게 크림(이보영)은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찾아왔다. 고아인 두 사람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함께 살아왔지만, 그들은 연인 관계가 아니다. 크림의 말에 따르면 그녀에게 케이는 “식탁에서는 엄마 같고 사회에서는 아빠 같고, 슬플 때는 오빠 같고 때로는 애인 같은” 남자다. 케이는 크림을 사랑하지만, 암세포와 함께 살아가는 처지라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없다. 케이는 라디오 PD로, 크림은 작사가로 살아가던 어느 날, 크림은 케이에게 치과의사인 주환(이범수)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케이는 이때부터 크림과 주환의 결혼식을 준비한다.
영화의 시작은 가수 이승철이 새로운 노래를 찾는 모습이다. 좋은 가사를 찾던 그는 우연히 케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랑하는 여자의 행복을 위해 그녀를 다른 사람과 결혼시킨 남자의 이야기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이처럼 전설과도 같은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의 영화다. 극중에 등장하는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란 시의 제목처럼, 영화가 들려주려 하는 것은 완전무결한 사랑의 형태이고, 당연히 영화는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애달픈 순애보로 가득하다. 만약 이 이야기가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퍼졌다면 미니홈피의 ‘좋은 글’ 폴더에 스크랩하기 딱 좋은 사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가 철지난 신파조로 일관하는 최루성 멜로영화인 건 아니다. 라디오 PD와 작사가라는 직업, 고아인 두 남녀의 알콩달콩한 동거 생활, 그리고 인물들의 각기 다른 시선에서 이야기를 구성한 것은 나름 시대적인 트렌드에 맞춰 기획한 듯한 요소들이다. 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편집이 눈물을 중화시키고 이모개 감독의 촬영과 효과적인 CG는 이야기와 감정에 부합하는 볼거리들을 만들어낸다. 주환을 연기한 이범수는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영화에 의외의 무게감을 싣기도 한다. 물론 다소 시효가 지난 듯한 대사들은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반지, 안경, 침대, 일기장이 되고 싶어. 너가 나를 사면 심심하지는 않을 거 아냐”라고 답하거나, “사랑은 양치질, 결혼은 칫솔꽂이”라는 정의들은 감독인 원태연의 시가 유행했던 1990년대 중반의 정서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개념에 대해 깊이있는 통찰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면 감상에 무리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화이트데이의 연인 관객을 겨냥해 제작된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그처럼 선물가게에 진열될 법한 팬시상품으로서의 강점이 있는 영화다. 나름 아기자기하고 다소 간지러우며 적당히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