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전 이 지면에 ‘MB를 욕하지 말자’는 제목의 글을 썼다가 일부 독자로부터 욕을 먹었다. “이봐 자네 그러지 말고 영화 이야기나 제대로 쓰지?”라는 반응이야 그렇다 쳐도 “노무현과 MB를 동급으로 비교하냐”는 항의는 좀 뜬금없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옛 유행어를 MB와 결부시켜 노무현을 폄하했다는 요지였다. 해석은 자유니까 뭐라 덧붙일 말은 없다. 그런 이들이 들으면 속이 뒤집어질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전두환에 빗대 노무현을 깎아내리므로, 이건 더 지독한 모독이 되겠다.
내용은 단순하다. 고 김수환 추기경 장례 때 왜 조문을 오지 않았냐는 비난이다. 알다시피 추기경과 가장 악연을 맺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왔다. 기자들에게 곤혹스러운 질문세례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다녀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끝내 명동성당에 발길을 들이지 않았다. 봉하마을이 너무 멀어서였을까? 친형의 구속 탓에 공개적인 행보가 부담스러웠을까? 아니면 대통령 재직 시절 다소 불편한 관계 때문이었을까? 그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문상을 하는 게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도리’였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전두환보다 속좁은 인간”이라는 오해마저 살 빌미를 줬다는 논리다.
사실 김수환 추기경은 말년에 석연치 않은 발언을 간혹 했다. 2004년엔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의 뜻을 밝혔다. 추기경에게 실망했던 여론을 다시 되새길 필요는 없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82살이었다. 일선에서 물러난 원로였다. 우리가 추기경에게 너무 많이 기대한 건 아니었을까? 사회변화에 대한 그의 완고한 태도가 드러나기 시작한 때는 90년대 중반이었다. 팔순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누구나 분별력과 판단력이 흐려지는 시기다.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여러 환경으로 볼 때 불가피했다고 변호하고 싶다. 종합적으로는 그가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거대한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올해 한국 나이로 80살을 맞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어떤가. 그 역시 고령이지만 왠지 ‘원로 대접’을 해주기는 싫다. <그랜 토리노>를 보고 감동을 먹은 뒤 그런 생각을 굳혔다. 그는 여전히 최전선에서 팔닥거리는 ‘현역’이다. 도대체 그 나이에도 어찌 그토록 멀쩡하고 형형하고 총명하단 말인가. 팔순의 감독으로서, 팔순의 연기자로서 오히려 젊은이들의 질투심을 자극하며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그가 공화당과 사형제도를 적극 지지하는 보수주의자임에도, 늙어서 닮고픈 멋진 노인네의 모델이다.
<씨네21> 이번호 표지에 실린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본다. <그랜 토리노>에서 손가락총을 쏘는 장면도 떠올려본다. 그리고 이 말들을 헌정하련다. 꽃보다 할배… 할배좀짱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