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을 딱 하루 다녀온 딸내미가 둘쨋날 아침 완강한 표정으로 “친구들이 너무 많다”(공간이 좁다), “애들이 판때기(개인용 놀이 매트)를 이렇게 해서(둘둘 말아 휘둘러) 부딪힐 거 같다”며 “이모할미(베이비시터)랑 집에 있다가 심심하면 놀터(놀이터)에서 놀겠다”고 선언했다. “엄마 회사 가도 잉잉 안 할 수 있다”며 난데없이 배꼽인사까지 했다. 33개월짜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을 총동원해 설득하는 바람에, 결국 내가 넘어갔다.
대안이 없어 보낸 동네 어린이집이었는데, 좁은 공간에 40여명이 북적대는 게 비현실적이긴 했다. 그곳에서 ‘두뇌개발’과 ‘영어공부’를 하는 건 내 짐작 이상으로 애한테 고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잡 셰어링할 수 있는 분이 계신 게 천만다행.
다시 월급쟁이가 되다보니 일자리 나누기를 명분으로 한 임금삭감을 제2의 금모으기 운동이라며 밀어붙이는 경제수장의 용맹함에 경탄을 금치 못하겠다. 배울 만큼 배운 분이 어떻게 무식해서 용감해지는 길을 택하셨을까. 입안자들이 모두 구준표도 아닌 주제에, 어떻게 잔디네를 휘청거리게 할 이런 정책을 ‘내수진작으로 경기를 회복시키겠다’는 정책과 나란히 내놓을 수 있냔 말이다. 일하는 시간은 안 줄이고 월급만 깎으면 대체 뭔 시간에 뭔 돈으로 사라고.
“당당하게 친기업 하겠다”는 이가 보스인 이상 이런 엇박자 정책은 당연한 걸까? <한겨레21>의 지난해 11월 특종을 잠깐 베껴, 요약, 환기하자면(어이, 잡 셰어링!), 일년 전 요맘 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묘령의 고위 당국자로부터 정부가 나서서 환율을 올리고 임금을 동결하면 경제가 어떻게 될지 연구해보라는 연락(지시)를 받았다. 연구결과는 한마디로 ‘뭔 뻘소리’라는 것이었다. 보고서는 ‘의구심’, ‘정부의 도박’, ‘지극히 불투명함’ 등의 표현을 총동원해 뜯어말렸다. ‘경우없는 충정’ 덕분인지 보고서는 비공개로 분류되는 운명을 맞이했지만, 해서는 안되고 할 수도 없다던 그 정책은 그러나 현실이 됐다. ‘환율을 두배 올리고 전 국민의 임금을 동결하면 747 공약을 이룰 수 있다’던 ‘거부의 꿈’은 747 숫자만 빼곤 모두 이뤄졌다. 나아가 임금삭감으로 가계소득을 기업소득으로 이전시키는 화룡점정까지 찍었다. 계획대로 됐는데 왜 자꾸 위기를 들먹거리시나.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괴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가. 하지만 남들 다 방황시키는 노력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애 방황시키는 노력도 그만 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