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다. 관람률이 80%라니…. 얼마 전 옛 대학선배들과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모두 40대 중반이었고, 남자들이었다. 영화는 그저 가끔 여가로 즐기는 수준이었다. 마니아들은 전혀 아니었다. 한데 신기하게도 <워낭소리>를 대부분 보았다고 했다. 4명의 선배 중 3명이었다. 나까지 포함하면 그 자리의 40대 남자들 중 4/5, 그러니까 80%가 관람한 셈이었다. <워낭소리>가 드디어 예매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음을 피부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날의 화제는 단연 <워낭소리>였다. 한 시간여 동안 선배들은 영화 감상평을 쏟아냈다. 관람 막판에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은 꽤 됐다. 유감스럽게도 감동했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짜증이 났다”는 평이 대세였다. 선배들은 모두 농촌 출신이었다. 그중 한명은 대학 졸업 뒤 농민운동에 투신하여 5년간 직접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날 나온 험담의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감정이입이 안돼, 감정이입이…. 소가 너무 불쌍해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 이건 완전 동물학대야. 소를 자기 집 새끼처럼 해주려면 쉬게 해야지. 꼴깍꼴깍 숨넘어갈 때까지 부려먹더구먼.” “그 집 창고를 보니까 새 땔감이 수북해. 영화에서 보면 할머니가 ‘죽기 전에 겨울 나라고 소가 땔감나무 해놓고 죽었다’고 칭찬하지만 그 나뭇단 실어나르느라 소가 수명 단축됐을 거야.” “영화 보면서 옛날 농사 지을 때의 이웃들을 떠올렸어. 꼭 그런 분들이 한명씩 있지. 경운기도 있으면서 꼭 소만 부려먹는 거야. 고추니 비료니 몽땅 소 달구지에 싣고 다녀. 마을 사람들이 ‘기름값 아끼려고 소 못살게 군다’고 욕했거든.” “소가 눈물 흘리며 마치 할아버지와 교감하는 것처럼 그렸던데, 소의 눈은 툭하면 젖어 있거덩?” 이건 전적으로 매사를 부정적으로 뜯어보는 그 선배들의 못된 습성 탓으로 치부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독립영화 한편이 이렇게나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잘나간다는 현실이다. 그날 20%에 속한 관계로 한마디도 못 끼어들고 그저 ‘멍만 때리던’ 한명의 선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에이, 답답해죽겠네. 나도 이번 주말에 그 영화 봐야겠다.”
취객의 구토에 감격했다는 술집 주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6개월이 지나도록 파리만 날리던 술집에 언젠가부터 서서히 손님이 차더니 하루는 한명이 술을 이기지 못하고 토사물을 바닥에 쏟아냈다. 사업 번창을 예고하는 팡파르처럼 보였을까? 그 주인은 개업 이후 최초(!)로 자신의 사업장에 ‘토’를 해준 손님의 손을 부여잡고 “고맙다”며 엉엉 울었다는 에피소드다. 독립영화가 파리 날리던 시절을 회상한다면, 트집을 잡는 관객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