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책을 쓴 사람이 그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동안 너무 게으른 독서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책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쓰였고, 그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려 하지 않고 그냥 책을 읽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준엄한 뉘우침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앓느니 죽지. 나는 역시 게을러터진 인간이로군.
책에 대한 책인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은 게으른 독자에게도 부지런한 독자에게도 알맞은 독서 체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문학집배원 성석제 엮음’이라고 되어 있는 이 책은, 정말 성석제가 문장을 엮어 펴낸 책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단을, 책 속 한 장면을 소개하는 책이다. 2∼3페이지 정도 분량의 장면을 발췌한 뒤 성석제는 아주 짧게 첨언한다. 고등학생 때 밑줄 그어가며 배운 김유정의 <봄봄>부터 불안함까지 동경하게 만들었던 전혜린의 <마지막 편지>, 젊은 독자가 사랑하는 김애란의 <나는 편의점에 간다>까지 52권의 많은 책이 등장한다. 성석제는 소설의 의의를 가르치려 들지 않고, 의미를 주입하려 들지 않고 그냥 문장을 늘어놓는다. 인심 좋은 백화점 시식코너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여기에는 전작을 쫓아다니며 읽었던 작가도 있고, 매번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되는 작가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작가도 있다. 한 장면을 다 읽고 나면 다음 장면을 보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 장면으로 충분히 즐겼다 싶은 경우도 있다. 게으르면 게으른 대로 이 한 장면을 꼭꼭 씹어먹으면 될 테고, 부지런하면 부지런한 대로 다음 장면을 찾아 그 작가의 책을 구해 후루룩 들이켜면 될 일이다. 판단은 당신이 한다.
이 책은 네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부는 ‘내 이럴 줄 알았지’, 2부는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3부는 ‘나는 박물관에 간다’, 4부는 ‘모두 잘 먹고 잘살았다’다. 성석제의 소설(특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1부에서 깔깔거리며 “역시 성석제!”를 외칠 테고, 4부 제목만 보고 섣부른 상상을 했던 사람이라면 장면 하나하나를 읽으며 황망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그래서 누가 잘 먹고 잘살긴 한 건가?). 제목은 ‘맛있는 문장들’이지만 아포리즘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책을 엮은 성석제가 한 장면과 이야기와 인간을 상상하는 작가의 역량에 더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