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마셜의 고귀한 호러영화 <디센트>의 소설판, 혹은 소설로 만들어진 <디센트>의 속편인 줄 알았다. 읽다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둘 다 지하의 지옥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히말라야 산맥을 트래킹하던 여행자들이 폭풍우를 피해 동굴에 몸을 피신한다. 거기서 온몸에 기괴한 기호가 새겨진 시체를 발견한 여행자들은 점점 동굴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이야기는 영화 <디센트>와는 다른 방향으로 확장된다.
칼리하리 사막에서는 태평양 밑바닥까지 이어지는 동굴이 발견되고, 보스니아의 유엔부대는 지하에서 등장한 생명체의 공격을 받고, 결국 지구의 지하에는 인류와 다른 진화를 거듭해온 백색 피부의 변종들이 살고 있음이 밝혀진다. 게다가 제프 롱은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바티칸이 등장하는 <다빈치 코드>식 종교-팩션물로까지 확장한다. 출판사의 설명에 쓰여 있는 ‘움베르토 에코의 철학적 성찰’은 반농담이다. 그래도 마이클 크라이튼 사망 이후 가장 크라이튼적인 오락거리라는 데는 이의가 없고 드림웍스에 영화화 판권이 팔린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감독이 <블레이드3>의 데이비드 S. 고이어라는 거다. 원작이 이 정도로 오락적이라면 꼭 기대를 거둘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