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인터폴 요원 루이 샐린저(클라이브 오언)는 국제적인 범죄와 전쟁의 배후세력인 은행 IBBC를 추적하고 있다. IBBC의 간부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빼내려던 동료가 눈앞에서 살해당하고 그 간부마저 사망하자 샐린저는 뉴욕 검사 엘레노어 휘트먼(나오미 왓츠)과 함께 공격적으로 수사에 나선다. 하지만 IBBC는 각국 정부의 비호 아래 범죄의 흔적을 지우고 수사를 중단시키기 위한 압력을 행사한다. 샐린저와 휘트먼은 IBBC의 명운이 걸린 무기 거래를 가로막음으로써 은행을 파산시키려 하고 IBBC는 강력하게 저항한다.
“은행이 미사일 유도장치를 사는 이유가 뭐요?” 초반부, 인터폴 요원이 IBBC 간부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 영화의 화두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개막작 <인터내셔널>은 이질적으로 보이는 은행과 미사일 유도장치 사이의 밀접한 관계, 그러니까 금융과 구조화된 폭력의 일체성을 폭로하는 영화다. 은행이 미사일 유도장치를 사는 이유는 미사일을 샀기 때문이다. 은행이 미사일을 산 이유는 이를 되팔아 세계에 분쟁을 조장하기 위해서다. 은행이 분쟁을 조장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국가적 빚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은행이 빚을 만드는 이유는 그 국가와 국민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다. <인터내셔널> 속 은행가는 “빚을 장악해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금융사업의 정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사업에는 문제가 있다. 이 모든 게 불법이란 점이다. 때문에 IBBC는 각국의 정치권력, 정보기관, 심지어 테러조직과도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전세계적인 공범 체제 속에서 피해를 보는 건 분쟁에서 목숨과 신체를 잃고 국가채무까지 감당해야 하는 보통 국민들이다. 영화적 몽상이라고? 영화 속 IBBC의 모델이 된 파키스탄의 은행 BCCI는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돈 세탁, 무기 거래, 핵무기 판매, 테러 지원 등의 범죄를 저질러 세계 금융 역사상 최대의 스캔들을 만들어낸 바 있다.
<인터내셔널>이 은행의 끔찍한 범죄를 폭로하는 방법은 그 상대축에 샐린저와 휘트먼을 놓고 대결시키는 것이다. IBBC가 동원하는 수단이 폭력인 만큼 이들의 대결이 두뇌 싸움보다 물리적 충돌로 귀결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IBBC의 흔적을 뒤좇아 베를린, 리옹, 밀라노, 룩셈부르크, 뉴욕, 이스탄불 등지를 오가는 샐린저와 휘트먼의 여정이 첩보물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본 시리즈’처럼 세련되거나 빠르지는 않아도 무게감있고 리얼한 액션장면들은 이 영화의 분명한 장점이다. 무엇보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똑같이 지어진 세트장)을 말 그대로 벌집으로 만드는 하이라이트 시퀀스는 그 어떤 액션영화보다 사실적이고 냉혹하다.
다행히도 이 영화를 보고 나온다 해도 은행 가기가 두려워질 정도는 아니다. 그건 이 영화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눈에 보이는 폭력을 수출하는 초국적자본이야 결국 소수 아니겠나. 21세기 금융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진정으로 무서운 건 ‘합법적 비즈니스’라는 명분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용어와 숫자를 들먹이면서 부를 갈취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보통 금융자본’ 때문이다. 이 ‘보이지 않는 폭력’이야말로 현대 금융사업의 정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