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식당, 정말 고마웠습니다.” 지난주, 회사로 온 편지 한통을 받고 어리둥절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며 알게 된 20대 중반의 여자후배였다. 서울에서 출판사를 다니는 줄 알았는데 편지의 발신지는 남쪽 지방의 도시였다. 함께 동봉한 책에는 올해 신춘문예에 입상한 자신의 희곡 작품도 실려 있었다. 한데 카모메식당이라니…. 편지를 읽으며 과거를 더듬자 새까맣게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맞다. 내가 그 영화를 보라 했었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2007년 12월의 어느 토요일, 한 대형서점에서였다. 책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커피나 한잔 하자”고 해서 30여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뭔가 서성이는 느낌이었다. 낮 12시경이었는데, 오후에 뭐할 거냐고 묻자 머뭇거렸다. 뚜렷한 스케줄이 없다고 했다. 나는 “혼자 처량하겠지만, 심심하면 극장에 가서 영화나 보라”고 반농담식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식당>이 재미있다고 추천해주었다. 일본인 여성이 핀란드 헬싱키에 식당을 열면서 생기는 해프닝들을 다룬 영화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화제도 별로 없고 해서 별뜻없이 던진 거였다.
그녀는 편지에서 “<카모메식당>이 평생 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되었다”고 했다. 으악, 그 엄청난 의미부여(!)에 나는 좀 민망해졌다. 사연인즉, 나와 마주치기 전날 직장에 사표를 던졌단다. 올바른 판단인지 확신이 안 서 이틀간 갈팡질팡하며 떠돌아다녔다는 거다. 그런데 다음날 나를 만났고, 곧바로 <카모메식당>을 보게 되었으며 결정적인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영화 속 인물들의 귀엽고 꾸밈없고 자유로운 모습에 자신의 꿈을 떠올렸고 퇴사의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용기를 얻은 그녀는 지방의 사범대 국문과 편입에 성공했다. 한 신문의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당선했으며, 그 희곡이 연극무대로 올려진다고도 했다.
얼마 전에 만난 30대 후반의 또 다른 후배도 직장에 사표를 내기 직전이었다. 10여년간 다닌 국제물류 회사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너무나 익숙해졌다며 엄살을 떨었다. 그는 뜻밖에도 <씨네21> 칼럼을 읽으며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고 했다. 다름 아닌 ‘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딴 세상에서 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칼럼이란다. 아스트랄하고 4차원적이지만, 지루한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준다고 했다. 읽기 전엔 사표 낼 결심이 10%였는데 지금은 80%란다. 나는 그 칼럼엔 안티팬이 많다며(툭하면 편집장을 걸고 넘어져서 나도 안티팬이다) 조심조심 가려 읽으라 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칼럼이 위로를 넘어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도록 생사람을 잡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위로가 먹히는 시대다. 더욱이 예측불허의 위로는 뜨악하면서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