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작업의 순간
[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나쁜 아저씨에 대항하는 법
이다혜 2009-02-27

<당신의 아이는 안전합니까> KBS <추적 60분> 제작팀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초등학생 때 일이다. 친구 하나가 이상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아빠 친구가 인형을 준다고 해서 아저씨 집으로 따라갔는데,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가 어떻게 알았는지 문을 쾅쾅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더니 자기를 끌고 나왔다는 거다. ‘나쁜 짓’을 하는 ‘나쁜 아저씨’라고 엄마가 설명했다는데, 나쁜 짓이 뭐냐고 물었더니 “나쁜 짓이라면 나쁜 짓인 줄 알아!”라고 윽박지르더라며 투덜거렸다. 우리는 놓친 인형을 아까워했다. 그 사건의 의미를 깨달은 건 고등학교에 가서였다.

이혜진, 우예슬양 사건의 범인은 검거된 직후, 귀엽다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아이들이 반항해 죽였다고 했다. 범인의 집은 높은 언덕에 있는 데다가 계단도 가팔라 아이를 둘이나 ‘강제로’ 끌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검찰의 수사 결과 범인이 “강아지가 아픈데 돌봐주겠니?”라고 아이들을 유인했다고 실토했다. 강아지를 핑계로 아이들을 유인하는 건 유괴범과 아동 성범죄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한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 며칠씩 살펴보는 경우도 흔하다. 어린아이일수록(그리고 범인이 경험이 많을수록)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말’을 이용한 설득이 사용되었다.

KBS <추적 60분>에서 방영한 ‘아동 유인 실험’을 책으로 정리한 <당신의 아이는 안전합니까>는 아이가 제발로 유괴범의 차에 타기까지의 과정을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아동 유인 실험에 참여한 20명의 아이 중 11명이 유괴범 역할을 한 연기자의 차에 탔고, 그중 9명은 차에 오르기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마라”는 부모의 다짐은 아이들에게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릴수록 ‘낯선 사람’이라는 개념이 희박하기 때문에 “엄마 친구인데 엄마가 xx 데리고 오래, 가자”라고 하면 처음 보는 사람도 아는 사람이라고 인식한다는 말이다. 유괴범 중에는 교회 집사 행세를 하며 ‘성경책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유괴 방지 교육을 시킬 때는 유괴범이 동화책에 나오는 호랑이나 늑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말끔한 차림의 사람이 안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성인도 명심해야 한다),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마라”는 말 대신 따라가도 좋은 사람을 콕 집어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암기시켜야 한다. “엄마, 아빠, 이모, 고모,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머니 이렇게 일곱명은 엄마의 허락이 없어도 같이 가도 괜찮아” 하는 식으로. 그외의 사람이 같이 가자고 하면 무조건 엄마나 아빠에게 전화를 하게 시킨다. 차에 탄 사람이 말을 걸면 차에서 멀찍이 떨어져 대답하고 절대 차에 타지 않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범죄심리학적으로 아이를 범죄대상으로 삼는 범죄자들은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완력을 쓰거나 흉기를 들이대면 있는 힘껏 소리지르게 교육시키는 것도 효과적인 대응책이 된다. 이런 식으로.

연기자: 이름이 뭐야? 대웅: 대웅이오. 연기자: 아저씨가 차 열쇠를 빼다가 잘못해서 열쇠를 빠뜨렸거든. 대웅: 안돼요! (라고 소리치고 바람처럼 집으로 달려감)

특히 예의바른 행동보다 자신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기분이 씁쓸해지기도 하는 조언이지만 미국의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가짜 깁스를 하기도 했다. 이런 조언도 있다. “뇌물은 대가를 바라면서 주는 것이고, 세상에는 공짜가 없음을 알려주세요.” 이런 건 어른도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