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시네마의 존립위기설이 또다시 불거졌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서울아트시네마에 지정위탁해온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려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기 때문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 2002년 5월 설립된 곳으로 그동안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매년 영화진흥위원회의 국고지원을 받아 운영해왔다. 만약 공모제가 강행돼 서울아트시네마 공모에서 탈락한다면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서의 자격을 잃고 극장임대료 등을 지원받지 못하게 된다. 전용관의 자격을 지키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당장 짐을 빼야 하는 세입자의 처지가 된다.
2009년은 일단 지정위탁형태로
서울아트시네마의 김홍록 사무국장이 영진위로부터 공모제를 통보받은 것은 지난 2월2일이었다. 이날 영진위쪽 담당자는 “영진위가 위탁사업을 하는 미디어센터 미디액트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회계연도가 1월까지라 2010년부터 공모제를 통해 운영주체를 선발할 예정이지만, 회계연도가 2월인 시네마테크는 올해부터 공모제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록 사무국장에 따르면 당시 영진위가 공모제 전환 배경에 대해 취한 입장은 “모든 위탁사업에 공모제를 실시하라는 게 문화관광체육부의 방침”이라는 것과 “공모에 응할 다른 주체가 없을 테니 오히려 서울아트시네마에 유리하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김 사무국장이 문화관광체육부 담당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또 달랐다. “영진위 같은 큰 조직의 사업시행일까지 관여하지도 않고 해서도 안된다고 하더라.”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영진위가 공식적으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납득이 될 만한 명분을 밝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월19일 현재, 이 사안은 일단 2009년에 한해 기존의 지정위탁형태로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을 진행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영진위의 김병재 사무국장은 <씨네21>과의 전화통화에서 “강한섭 위원장과 여러 영화계 종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올해는 예년과 같은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재고이기 때문에 2010년부터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할 예정이다. 게다가 김홍록 사무국장의 말에 따르면 “영진위는 올해 6월부터 공모심사를 할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내년이 아니라 당장 올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독립영화전용관과 미디어센터도 당연히 자유롭지 않다. 인디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원승환 한국독립영화배급센터 소장은 “우리는 공모제가 구체화되기 전인 지난 1월2일, 앞으로 1년간의 지원협약을 체결했지만, 내년부터는 공모제가 실시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의 위탁사업에 대한 영진위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내년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한 김병재 사무국장은 “이제부터라도 의견을 수렴하고 대화하면서 방법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형평성 위해 무리하게 서두르나
논란은 잠잠해지는 분위기이지만, 영진위가 전용관 사업을 지정위탁에서 공모제로 전환하게 된 배경은 여전히 의문이다. 김병재 사무국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은 부분의 개선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울아트시네마와 소통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가 작성한 2008년 국정감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영진위는 “단체지원사업이 독립영화협회, 영화인회의, 제작가협회, 영화인협회등 소수단체에 40%가 집중지원되고 있으므로 형평성 차원에서 단체지원 사업의 추진방식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받았고, 이를 위해 “공모사업 수행시 특정 단체에 편중하여 기금이 지원되지 않도록 공모사업 및 위탁사업의 전반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받았다. 김병재 사무국장은 “국민들이 만들어준 기금을 여러 부문에 안배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무시할 수 없는 게 영진위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국정감사의 지적사항을 개선해야 하는 영진위의 입장에서 볼 때, 사실상 가장 명확한 공모제 전환의 배경은 ‘형식적인 절차’이다. ‘누구를 뽑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지적사항을 개선했다는 명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영진위에서는 시네마테크를 운영할 수 있는 곳이 시네마테크협의회밖에 없으니 상관없지 않냐며 법적인 형식을 갖추는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는 김홍록 사무국장의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영진위가 공모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무리를 했다는 점도 그렇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공모제 전환을 통보받은 2월2일은 운영지원재계약을 2주 앞둔 날이었다. 그런데 영진위가 2월17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2009년도 영상문화조성팀 세부사업계획’에 따르면 시네마테크전용관 위탁운영자 선정 공고를 2009년 2월에 발표해 2월 말에 심사 및 선정을 실시하고, 2009년 3월에 위탁운영 약정체결 및 지원금 지급을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4억5천만원이나 되는 지원사업의 운영자를 선택하는 공정을 1년 중 가장 짧은 달인 2월에 모두 끝내려 했던 것이다 김홍록 사무국장은 “공모제가 이런식으로 추진될 경우에는 제3자가 보기에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볼 수 있다”며 “오히려 이 공모제 자체가 2009년 국정감사장에서 지적사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진위는 후원자인가 설립자인가
무엇보다 가장 큰 논란의 쟁점은 공모제 전환의 배경이 아니라 ‘과연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주체에 대해 공모제를 실시할 법적 근거가 있는가’란 의문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시네마테크는 애초에 영진위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민간기구에서 출발한 곳”이라며 “어떻게 운영비 지원 명목으로 운영주체를 결정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공모제를 통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은 사항을 개선하겠다고 할 때, 서울아트시네마는 그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김홍록 사무국장의 말에 따르면, 영진위는 “관련 근거를 찾았다”고 했다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설명은 부족한 상황이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담당자인 영진위의 김종호 영상문화조성팀장도 “영진위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설립될 때부터 위탁계약을 통해 운영뿐만 아니라 공간임대를 비롯한 많은 부분을 지원하기 때문에 위탁을 어디에 맡길지를 공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하는 정도다. 이미 관련 근거에 대해 답변서를 요청한 김홍록 사무국장은 “가장 크게 지원받는 게 극장임대료이기 때문에 서울아트시네마가 민간영역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있지만, 서울아트시네마가 영진위의 직접적인 사업범주 안에 포함되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주객전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영진위와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이 사안을 푸는 열쇠가 될 전망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누구의 것인지. 영진위는 시네마테크의 후원자인지, 아니면 설립자인지. 하지만 아직 영진위는 이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