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소설 지수 ★★★★ 미스터리 지수 ★★★
“요즘 일본에서는 경찰소설이 큰 인기입니다.” 지난해 가을 취재를 위해 만났던 일본 <미스터리 매거진> 편집장은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최근 경향을 한마디로 설명했다. 왜 경찰소설인가. 그 질문에 대답할 소설 한권을 꼽으라면 바로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가 아닐까 한다. 200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를 차지한 이 소설은 전후 일본사회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찰 3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후 일본. 안조 세이지는 생활고로 고민하다 경찰이 된다. 경찰이 되기 그리 어렵지 않던 시기, 세이지는 성실한 근무 태도로 도쿄 덴노지 주재소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경찰 끄나풀로 의심받던 남창 살인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터지자 세이지는 혼자 탐문을 하며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데 그 인근에서 큰 화재사건이 발생하고 세이지는 사고로 죽는다. 경찰인 아버지를 존경했던 세이지의 아들 다미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찰이 되지만 대학 진학을 조건으로 홋카이도대학 좌파세력에 잠입수사를 명령받는다. 다미오는 적군파의 잇단 체포에 수훈을 세우지만 오랜 이중생활로 심리치료를 받는 신세가 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미오가 원하던 대로 아버지가 근무했던 주재소에 부임해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고자 하던 어느 날, 인질사건에 휘말려 순직한다. 그리고 다미오의 아들 가즈야도 경찰의 길에 들어선다.
<경관의 피>가 이야기하는 경찰 3대는 60여년간 일본사회의 온갖 사건을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낸다. 그런데 이들이 경찰로나 인간으로나 늘 정의로운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세이지가 공원 노숙자와 폭력배 단속 정보를 착한 노숙자에게 귀띔해주는 건 그나마 나은 것이려나. 다미오는 20대를 프락치로 보내다 마음의 병을 얻어 가정폭력을 행사하고, 3대째 경찰이 되어 ‘경관의 피’가 흐른다는 인정을 받은 가즈야가 받은 첫 임무는 내사 중인 직속상관 감시다. 그들을 둘러싼 다른 경찰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몇대가 이어져도 우동가락을 뽑는 장인처럼은 될 수 없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보고 자란다”는 말은 세이지의 손자 가즈야에 이르면 오싹할 정도의 울림을 갖는다. 가즈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모두 알아낸 뒤, 알아낸 진실을 적절히 이용하는 법을 익혀 사고사도 순직도 하지 않고 경찰로 살아남기 때문이다(사사키 조의 다른 책 <웃는 경관>에 대한 이야기는 106쪽 ‘원작의 뒤안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