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귀환의 시대인가 보다. 내 소녀 시절의 ‘아이돌 스타’ 최양락이 <야심만만-예능선수촌> 초대손님에서 고정까지 벼락같이 재기하더니 며칠 전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에서는 ‘부활’의 김태원이 나와 극상의 빅재미를 주셨다.
사실 김태원의 예능 활약을 귀환이라고 하는 건 좀 말이 안된다. 그는 로!커!가 아닌가. 동종 업계 종사자인 김종서가 비교적 일찍부터 엔터테이너의 길을 갔던 데 비해 김태원은 지난해 가을 <라디오 스타>에 출연할 때까지 로커의 길을 묵묵히 걷는 것으로 알았으니까. 물론 그는 지금도 가고 있다. 마땅히 공연으로 보여줄 공간이 적어 부활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예능에 출연하게 됐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러니까 ‘묵묵히’라는 단어만 ‘약간의 구라발과 함께’로 수정하는 정도?
그래서 김태원을 보는 건 예능 늦둥이가 아니라 아저씨가 된 로커 혹은 뮤지션은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가를 들여다보는 것이라 좀 다른 재미가 있다. 그중 나에게 중년의 로커에 대한 선입견을 벗겨준 첫 번째 충격. <라디오 스타>에 나왔을 때 그는 사업을 구상한다고 했다. 한국의 록 발전을 위한 후배 양성이나, 뭐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그가 쿨하게 말한 건 바로 ‘네일 아트’. 키스나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네기시처럼 괴기스러운 분장을 하거나 엑스재팬처럼 화장을 진하게 한 록뮤지션은 봤어도 네일 아트 사업이라니. 이건 마치 믹 재거가 치매 예방을 위해 멤버들과 뜨개질 소모임을 조직했다고 인터뷰하는 것을 듣는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흔한 레퍼토리처럼 그가 생활인으로 돌아온 지난날의 탕아는 결코 아니다. <놀러와>를 보면서 매력적이었던 건 나이 들어가는 뮤지션의 ‘지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기타리스트는 말라야 한다고. 이유가 뭐냐고 누군가가 물으니, 그것이 철학이란다. 그래서 안 먹고 몸매 관리를 하다보니 하체가 부실해져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다는 것. 뮤지션의 자기 관리와 연륜(몸매 관리를 버티기에는 체력이 못 따라주는)이 만들어낸 사이드이펙트가 예능 프로 시청자를 빵 터트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아티스트의 강한 자존심이 느껴지는 부작용이 아닌가. 장기간의 치아 교정 이야기를 하다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비약적 마무리를 했을 때 느껴졌던 경지 역시 자신을 돌보지 않는 로커의 음주 생활패턴이 가져온 후유증인 듯했다. 로커라면 40대에 술, 담배 끊고 교회에 착실히 나가 집사가 됐다는 이야기보다 <라디오 스타> 크리스마스 특집편처럼 첫 연습 때 술에 완전히 취해 연습실로 들어섰다는 에피소드가 차라리 더 멋진 법이다.
김태원은 ‘소녀’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이른바 말발 센 예능인들은, 아니 나나 친구들조차 수다 떨 때 소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미쳤나, 이상하잖아. 그런데 그가 말하면 이상하지 않다. 김태원은 여전히 자기 페이스로 가는 로커고 주변 눈치 보면서 한방 빵 띄우기 위해 조바심내는 예능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내가 권할 일은 아니지만 그가 예능 프로에 너무 자주 나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1년에 한두번 마실 나오듯 나와서 중년의 로커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들려준다면 ‘형님’에 대한 애정은 영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