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의 원작을 열렬히 좋아한다는 독일 베를린의 관객 토마스 클레어
베를린은 지금 토마스 만 열풍이다. 독일 문호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Budenbrooks)이 새로 영화화되어 지난해 연말부터 지금까지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한자도시 뤼베크에서 상사를 운영하는 뼈대있는 부덴브로크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 소설은 토마스 만에게 1929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품. 1620만유로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아낌없이 투여됐고 독일의 국민배우인 이리스 베르벤과 톰 티크베어 감독의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 호연했던 예시카 슈바르츠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하인리히 브렐로어 감독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은 1800년대 말 독일 부르주아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화려한 의상과 소품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 영화다. 베를린 초 역 근처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온 한 관객에게 말을 붙였다.
-자기소개를 간략하게 해달라. =이름은 토마스 클레어. 나이는 37살이다. 현재 출판사에서 법률 관련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한다.
-이 영화를 본 이유가 있나. =토마스 만의 원작을 예전부터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이걸 영화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제작비가 엄청나게 들어간 영화라고 광고들을 해대는 통에 과연 좋은 영화일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은 토마스 만의 동명 원작을 네 번째로 영화화한 작품이기도 하고, 또 요즘 시각으로는 어떻게 각색했을지가 무척 궁금했다.
-영화는 마음에 들던가. =전체적으로 꽤 마음에 들었다. 원작이 워낙 훌륭해서 영화를 어떻게 찍든지 간에 좋은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처럼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원작은 언제 읽었는가. =20년 전쯤 한번, 10년 전에 한번. 그렇게 두번 읽었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한다면 어떤가. =영화 첫 장면이 화려한 무도회로 시작해 마지막 장면은 모두 떠나고 없는 텅 빈 저택이다. 이것만 놓고 봐도 소설이 상징하는 바를 잘 나타낸 것 같다. 하지만 원작에 비해 내용을 너무 단순화해 중요한 부분이 많이 빠졌다.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할 것 같다. 토마스 만은 작품을 통해 근면성과 성실성으로 대표되는 시민 기질과 감수성과 예민함으로 대표되는 예술가 기질의 갈등을 주제로 묘사한다. 영화는 이런 주제도 전체적으로 잘 나타낸 것 같다. 토마스 만 특유의 아이러니가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그런 거야 영화로 표현하기엔 무리일 거고.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각색한 예전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어떤가.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다른 옛날 영화들은 좀 딱딱했었다. 그에 반해 이번 영화는 좀더 대중에게 어필하도록 만들어진 게 예전 작품들과는 다른 요소인 것 같다. 물론 할리우드식 기법과 센티멘털한 음악이 좀 거슬리긴 하다. 좀더 흠을 잡자면 원작에 비해 내용을 너무 단순화한 나머지 중요한 부분들이 많이 빠졌다. 그래서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배우지만 토마스 부덴브로크와 크리스티안 부덴브로크 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일품이다. 특히 크리스티안의 “상인들은 원래 사기꾼 기질이 있어서…”라는 대사는 지금 세계를 휩쓰는 금융위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문이 있지 않은가? (웃음)
-특별히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이 있었나. =주인공 토마스 부덴브로크가 치과에서 이 뽑는 장면이다. 알다시피 그는 마취도 없이 이를 뽑고 나서 후유증으로 죽는다. 나도 얼마 전 치과에서 사랑니를 뽑았기 때문에… (웃음) 그 장면을 보면서 정신이 아득해지더라. 의학이 발달한 요즘 세상에 산다는 것에 정말 감사한다. (웃음)
-보통 어떤 영화를 즐겨 보나. =솔직히 말하자면 상업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디펜던트영화를 선호하지만 그것도 작품 나름이다. 미국영화보다는 유럽영화를 선호한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또 액션, 블록버스터, 판타지영화는 영 구미에 맞지 않는다. 그래도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좋아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