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고 철없는 남자. 이민기에게 그것은 오래 입어 편안하게 늘어진 티셔츠 같았다. 그를 알려준 <굳세어라 금순아>와 <달자의 봄>이 그랬다. 제법 안정된 연기를 선보였던 <태릉선수촌> 이후에도 그는 항상 이 편한 차림새를 고수했다.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의 철없는 태권도 사범 이미지는 본격적인 영화 데뷔작 <바람피기 좋은 날>의 숙맥 대학생으로, <로맨틱 아일랜드>의 명랑한 백수로 끊이지 않고 맥을 이어갔다. 이민기는 그렇게 불안하고 흥미로운 캐릭터로 매 작품에 자신을 대입했고 그건 그를 설명하는 일종의 수식이었다. 그런 이민기가 변했다. 지금까지 입었던 몸에 잘 맞는 의상을 벗고 막 구입한 새 아이템에 눈길을 돌린다. 2월19일 개봉을 앞둔 <오이시맨>에서 그는 귀가 잘 안 들리는 이명현상 때문에 뮤지션의 길을 접을 위기에 처한 청년 현석을 연기한다. 시린 홋카이도 여행, 무표정한 얼굴, 독백의 대사들, 찰나의 사랑… 어느 하나 지금까지의 이민기가 입었던 옷이 아니다. 때마침 그가 뮤지션으로 싱글 음반까지 발매했다. 어느 날 아침, 매일 입던 옷이 너무 어려 보여 못 입게 된 성장기의 소년처럼 그가 훌쩍 커버렸다.
-드디어 누나들이 사랑하는 천방지축 캐릭터에서 벗어난 건가. =굳이 이 작품으로 ‘지금까지의 귀여운 이미지에서 탈피해야지’ 하는 각오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음악에 대한 관심에 뮤지션 관련 시나리오가 있다고 해서 봤다. ‘갑자기 왜 진지해지나’ 하는 주위의 시선이 걱정스러웠는데, 막상 할 때는 그런 부담감이 없었다.
-주변 반응은 어떻던가. =‘오이시맨’ 하면 잘 모르더라. ‘오이시’가 ‘맛있다’라는 뜻이라고 설명해주면, 다들 ‘맛있는 남자?’ ‘또 야한 영화 찍는구나’ 그런다. 보고 나선 다들, 속았다고 한다. (웃음)
-음악을 더이상 못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한 캐릭터다. 현석의 고통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겠다. =캐릭터는 만드는 게 아니라 하기로 결정하고 나면 그때부터 저절로 만들어진다. 현석이라는 인물도 마찬가지였다. 촬영하기로 마음먹은 뒤부터 기타만 치고 밥 안 먹고 라면 먹고 술 먹고 이 생활을 한 한달 넘게 했다. 그랬더니 진짜 현석이처럼 매가리도 없고 우울해지더라.
-항상 상대 여배우가 화려하다. 이번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케와키 지즈루와 정유미와 함께 공연한다. =유미 누나는 의사소통이 100% 가능해서 친해졌고, 이케와키 지즈루 같은 경우는 말이 잘 안 통해서 오히려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다. 촬영 기간 동안 진짜 캐릭터가 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대단한 배우였다.
-<로맨틱 아일랜드>는 보라카이 촬영이었는데, 끝나자마자 춥다고 소문난 홋카이도로 직행했으니 물리적으로 고생도 많았겠다. =등산용품점에서 기능성 등산 내복까지 사갔었다. (웃음) 그런데 의외로 춥지 않더라. 몸베츠라는 지방인데 총 40일 촬영 중 그곳에서 절반을 지냈다. 보라카이처럼 관광지가 아니라 몸베츠는 여기서 누가 죽어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통 없는 곳이다. 그 적막이 좋더라.
-연기를 떠나 <오이시맨>은 이민기라는 배우의 변신과 성장을 보여준다. 얼마 전 싱글 음반까지 낸 뮤지션 이민기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순서가 바뀌었다. 음악을 하려고 <오이시맨>을 선택했다기보다 이 작품은 음악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기타 배우고, 뮤지컬 노래 수업도 받고 발성도 배웠다. 자연스럽게 한 거 같다.
-싱글 앨범 발매를 프로듀싱한 스즈키 신이치와의 인연도 <오이시맨>과 연결되나. =그건 아니다. 그건 우연이었는데, 형(기획사 대표)이 스즈키씨와 친분이 있었다. 가수 시연 누나가 ‘프리템포’의 곡을 받아서 작업하는데 나한테 남자 피처링을 해보겠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작업한 한 소절을 ‘위켄더스’가 듣고, 이번에 한국에서 곡 작업을 하는데 ‘프리템포’ 피처링했던 그분이 해줬으면 좋겠다 했다더라. 내 목소리만 듣고! 물론 좋다고 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다.
-운이 좋았다는 건가. =난 항상 운이다. 연기자가 되게 된 것도 그렇고.
-그러게 요즘 당신의 활동을 보면 연기자는 운으로 됐고. 원래는 배우 말고 뮤지션이 되고자 했던 거 같다. =나는 과연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 태어났을까? 어쩌면 내가 음악하라고 태어났을지도 모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게 한 3년 전쯤, <진짜진짜 좋아해> 그 드라마 하던 때였다. 사람들이 연기를 할수록 는다, 그런 말들 하는데 난 잘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오히려 처음에는 어쩌다 기회가 있어서 했고, TV에 나온다는 명분이 전부여서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좀 지나니까 사람들이 나를 배우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나 자신도 고민이 많아졌다. 예전 같으면 안돼도 그냥 ‘이게 진짜야’하면서 거리낌 없이 했는데, 이제는 ‘안되면 쪽 팔리는데’ ‘못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고민이 앞서는 거다. ‘난 연기를 위해 태어난 놈’ 이런 엄청난 각오도 없으니. 연기 접고 음악하자 싶었던 거다.
-실행에 옮기려고는 했나. =바로 커트 당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웃음) 그때만 해도 꼭 이거 아니면 안돼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결국 내가 경험하는 시간들이 나를 만드는 거더라. 연기만 하면서 살아간 5년 뒤의 나와 연기도 하고 음악도 관심 가져서 다 하면서 느끼는 것들을 쌓은 미래의 나랑 어느 것이 더 풍성하냐고 했을 때는 후자다.
-정식 데뷔는 아니었어도 그때부터 개인적으로 음악 활동도 했겠다. =음악은 노는 거다. 시간을 보내는 것. 친구들끼리 축구를 좋아서 같이한다면 그게 우리의 시간이고, 열심히 하는 거고, 운동이고, 살아가는 게 되는 것처럼 내가 이 작품 때문에 적극적으로 기타학원 다니고, 작품 끝나고도 촬영 없는 동안 계속 다니니까 친구들도 자연스레 학원에 등록하더라. 그러다보니 드럼, 노래, 이런 포지션들이 생기게 되고 밴드 해도 되겠더라. 아직 합주팀 수준이지만.
-그래도 역시 행운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지난해 연말 MKMF 시상식 무대에서는 달랐다. 음악이 평생의 꿈이었다며 <마이 웨이>를 열창하던데. =십대 때 남학생들은 대부분 록스타를 꿈꾼다. 노래방 가면 다 <She’s Gone> 부른다. 나도 꿈꿨다. 그렇다고 ‘내 인생은 록이다. 난 학교 필요없고 선생 필요없어’하고 십년 동안 갈고닦아 그 무대에 선 건 아니다. 그건 쇼였으니까. 그런데 엄청 긴장되더라. <오이시맨> 때는 이민기가 아닌 현석이 하는 거니까 사람 많은 바닷가에서 기타 쳐도 하나도 안 떨렸다. 그런데 MKMF 때는 ‘이민기’라는 이름으로 뭔가 비장한 가사의 <마이 웨이>를 부른 거다. 설경구 형이라면 모를까, 내가 인생 운운하는 게 정말 말도 안되는 거다. 그래도 막상 하고나니 잘했다 싶긴 했다.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하려 하나. 역시 음반처럼 시부야계 음악이 주를 이루나. =내가 줏대가 없다. 그냥 이것저것 다 좋다.
-연기도 그렇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 이민기라는 배우는 딱히 맘먹고 달려든다는 느낌이 적었다. =멋모르고 시작했다. 아무 생각없이 했다가 오디션에 붙고, 촬영한다고 해서 가보면 카메라있고 조명있고 그랬다. 일일연속극 <굳세어라 금순아> 오디션 붙었을 때도 비슷했다. 이제 TV에 나온다, 매일매일 나온다, 연예인 되나보다 그랬으니까. 그런데 한달도 안돼서 그게 다 깨졌다. 나도 연기를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고민이 시작됐다. 그때가 제일 굳어 있던 시기였다. 사투리를 하도 못 고쳐서 보다 못한 작가 선생님이 신을 하나 써왔더라. 누가 ‘저 애 성격이 왜 저렇게 모났냐’고 하니까 엄마가 ‘어릴 때 할머니 집에 보내가지고 성격도 이상하고 말도 저 꼬라지지’ 했다. 그 대본 리딩하는 날 선생님들 다 배 잡고 웃었다.
-그런 경직이 풀린 건 이윤정 PD와 함께한 MBC 베스트극장 <태릉선수촌>이었다. 늘 하던 이민기식 철없는 청춘이었는데도 안정된 캐릭터가 확립됐다. =그게 <굳세어라 금순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굳세어라…> 때는 내일 촬영 있으면 오늘 집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가고 대본을 닳도록 외웠다. 친구가 통닭 먹자고 해도 ‘통닭 먹을 시간이 어딨냐. 내일 촬영해야 한다’고 거절했다. 볼펜 물고, 신문 소리내 읽고, TV 아나운서 멘트 따라하고. 별걸 다 했다. 긴장한 만큼 노력했고 그러면서 점점 자연스러워진 거 같다. 놓아버린 거다. 해도 안되니까. (웃음) 근데 그러니까 오히려 더 잘되더라.
-어쨌든 못해도 한다는 느낌이 신선했고, 그 분위기가 이민기가 가진 천방지축 젊은이의 캐릭터에 반영되었다. =내가 좀 낙천적이다. 김해에서 모델한다고 무일푼으로 올라와 친구집에 살다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그 돈도 없어 PC방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친구들 집에서 살고. 옥탑방 살다가 월셋집으로 전셋집으로 옮기는 그런 과정. 굉장히 뻔한 고생담 같지만 난 그 과정이 재밌었다. 오히려 조금 풍족해진 지금보다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원래 좌절모드가 아예 근절된 상태인가보다. =맞다. 안 좋은 평가를 들어도 ‘다 잘하려는 건 욕심 아닌가’ 이런 생각이 크다. 그런데 몸은 달라진다. 탈모도 생기고, 어느 순간 다크서클이 내려오고 나조차 인지 못했는데 스트레스를 받나보다.
-연예계 데뷔는 모델이 출발이었다. =딱히 목표였던 건 아니다. 그냥 ‘더 맨’(매니지먼트사) 홈페이지에 내 사진을 올렸는데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왠지 사기꾼 같아서 친구들도 ‘너 새우 잡으러 간다’ 겁줬다. 다행히 좋은 사람들이었고 나를 믿어줘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김해 촌놈’이 그렇게 발탁된 걸 보면 어릴 때부터 끼가 있었나보다. =키는 컸지만, 굉장히 평범했다. 그래도 하기 싫은 건 안 했다. 자율학습하는 시간에 차라리 오락실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내가 오락실 사장 할 수도 있는데, 교실에 앉아서 자고 오목 두고 이런 시간이 아깝더라. 농땡이도 많이 쳤다.
-학교는 농땡이였는데, 데뷔 이후 생활은 모범적이다. 모델부터 단막극, 주말연속극, 일일연속극, 영화, 뮤지션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러고 보니 꾸준히 하긴 했다. 어떤 때는 일주일만 아무 일 없이 쉬었으면 할 때도 있었으니까. 근데 막상 <루프스>라는 영화를 하려다 엎어지면서 3~4개월 쉬는데 남는 게 없더라. 역시 작품을 해야 그해가 보람차다.
-불굴의 의지도 없는데, 이렇게 흘러가는 게 스스로 부담되지는 않나. =야구로 따지면, 에라 모르겠다 하며 얼결에 휘두른 게 다 홈런인 셈이다. 그래서 이번 경기에 헛방 날리면 큰일나는데, 하는 부담감은 있다. 그래도 난 그런 거 별로 생각 안 한다. ‘주인공은 말도 안된다’ 했다가도, 한편으론 ‘내가 이걸 해서 큰일날 거면 연기 오래 못할지도 모르는데 주인공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하고 고쳐 생각한다. 왕년에 애 앉혀놓고 “봐봐, DVD 있지. 아빠가 주인공이었어”, 이런 거 해볼 수 있지 않나. (웃음) 그래서 요즘은 좀 고집이 세진 편이다. 안되더라도 일단은 해보려는 마음이 크다. 내 지론은 좋은 사람 만나면 다 잘된다다.
-좋은 사람들과 줄줄이 작품이 이어진다. 해양블록버스터 <해운대> 촬영은 끝냈고, <십억> 출연도 기대된다. =<해운대>는 설경구 형의 동생으로 나오고 해안경비대 역할이다. 사투리 연기라 그것 때문에 교정했던 사투리를 다시 써서 지금 고생이 심하다. 한 6개월 편하게 사투리 썼더니 서울말 하는 거 자체가 너무 귀찮다. (웃음) 곧 촬영하는 <십억>은 <강적>의 조민호 감독님이 연출한다. 서바이벌 게임을 다루는 내용인데 극한상황에서 난 유일하게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연기를 한다. 아직 역할 파악이 잘 안돼 해봐야 알 거 같다.
-남들이 기대하는 이민기와 별개로 자신이 바라는 배우 이민기의 철칙은 무엇인가. =천방지축 캐릭터를 많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역할일 뿐 나 자체는 아니다. 나라는 사람도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역할도 내 몸에 맞을 거라 생각한다. <바람피기 좋은 날> 하다가 갑자기 <아메리칸 히스토리 X> 같은 변신을 보여주는 것보다 조금씩 몸에 맞는 역할들로 영역을 넓히고 싶다. 이번에 여러 작품을 하면서 느낀 건 ‘아, 감독님 말씀 잘 들어야겠다’다.
-무슨 계기라도 있었나. =이명세 감독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시던데. ‘네가 어떤 명연기를 하던지 나중에 편집할 때 빼버리면 그만이라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