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마치고 몇년에 한번쯤 결혼식이다 뭐다 해서 다시 가보면 허구한 날 공사 중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캠퍼스에 아파트나 주상복합을 지어 일반분양하고 싶은 게 학교당국의 생각 같았다. 대리석 벽면에 기증자 이름만 나열됐다 뿐 대학인지 회사인지 알 수 없게 휘황(혹은 허황)하게 세워진 건물들도 그러하지만, 족구를 하던 자리는 주차장으로, 컵라면 먹는 아이들에게 김치 보시기를 건네던 주인 부부의 매점(깡통이라 불리던)은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바뀐 것은 교정만이 아니다. 한 식판을 들고 두번 세번 오가도 밥을 퍼담아주던 학교 고용 아주머니들은 사라지고 프렌차이즈 외식업체의 모자를 눌러쓴 표정없는 이들이 정량의 밥만 담아주었다. 콩다방 별다방이 자판기를 대체했다. 한마디로 돈 없으면 다니기 힘든 곳이 돼버렸다. 하긴 돈 없으면 들어가기조차 힘든 곳이니.
고려대가 입시사고 혹은 입시사기 같은 일을 저질러놓고도 배째라로 일관하고 있다. 명백한 특목고 우대 아니냐는 일선학교 교사들의 항의에는 ‘이번에 니네 학교에서 1차 합격한 애들이나 다음해에 들어올 애들이 불이익받지 않게 하려면 입 닥치라’는 요지로 협박한다. 같은 학교 출신 지원자들도 내신과는 거꾸로 당락이 갈린 걸 보니, 입시부정이 아니라면 편법으로 고교등급제를 적용하려다 시스템 오류를 일으킨 것 같다. 해명은커녕 변명도 못하면서 큰소리치는 게 참으로 ‘고려대스럽’고, 별다른 제재를 취하지 않는 교육당국은 참으로 ‘교육부스럽’다.
돈 벌어 제 몸집 불리는 데 쏟아붓는 건 마찬가지인데 대학과 기업의 차이는 뭘까. 기업은 최소한 법적·사회적 책임, 혹은 체면이 있다. 불량상품을 만들거나 불공정거래를 하거나 회계조작을 하면 처벌받는다. 세금도 내고 문어발 확장도 제한받는다. 하지만 대학은 ‘교육사업’ 혹은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그 모든 게 뭉개진다. 명백한 담합인 입시 전형료로 돈 벌고 비현실적인 등록금으로 돈 벌고 유명세에 편승한 특수과정 만들어서 손 안 대고 코 풀듯이 돈 벌면서, 이익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정의조차 가뿐하게 피해간다.
출신 대학의 학력고사 커트라인으로 개인의 지적 능력이 평생 등급 매겨졌다면, 이젠 어쩌면 ‘개인의 고유한 지적 능력’만 뺀 나머지 모든 것이 자동으로 등급 매겨지는 것 같다. 특히 교육이라는 악질시장에서는 가족(경제력)과 고향(출신고)에 더해 선후배관계(입학률)라는 신종 연좌제까지 등장했다. 고려대만 아는 내신보정 상수 k값, α값의 비밀은 바로 이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