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그러니까 90년대 중반. 모두가 알튀세르의 책을 읽었다. 그 시절 과방에 놓여 있던 날적이를 다시 펴본다면 손발이 오그라들게 분명하지만- 이를테면 “나는 알튀세르처럼 죽을 것이다”로 끝나던 그 일기들 말이다- 어쨌거나 서구 마르크스주의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알튀세르가 한국 현대문화계에 내린 영향력 또한 깊고도 단단하다.
1993년 초반 발매되어 알튀세르 애호가들의 장서를 오랫동안 장식해온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가 새롭게 출간됐다. 이 책은 아내를 살해한 정신나간 철학자로서의 자기 정신분석이 가미된 자서전인 동시에 20세기 서구 지성사를 한번에 읽어내릴 수 있는 훌륭한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초판에는 없었던 문헌자료와 색인이 꼼꼼하게 수록됐고 진태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의 해설은 좋은 길잡이다. 알튀세르는 썼다. “삶이란 그 모든 비극에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나는 지금 예순일곱살이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지금, 나 자신으로서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청춘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곧 인생이 끝나게 되겠지만, 젊게 느껴진다. 그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출판사의 의중이야 모르지만 하 수상한 시절에 <미래는 오래 지속되다>가 재출간되는 건 꽤 재미있다. 알튀세르의 미래 또한 오래 지속되는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