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보(Garbo)라는 휴지통이 있다. 이름은 몰라도 사진으로 보면 누구나 알 만한 디자인의 이 휴지통의 이름은 당연하게도 배우 그레타 가르보에서 딴 것. 쓰레기라는 뜻의 영단어 ‘garbage’와 ‘가르보’(Garbo)의 유사성을 둔 말장난이다. 세계적으로 400만개 이상 팔렸으며 (아마 무단) 복제품도 그만큼이 팔려나갔을 이 우아한 곡선의 휴지통은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의 디자인이다. 카림 라시드는 휴지통과 소파에서부터 라 침발리사의 에스프레소 기계와 피아트 자동차의 내장 가구와 계기판, 아테네의 세미라미스 호텔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이 필요한 모든 곳에서 활약한다. 그 디자인 원칙으로 인생을 디자인하는 법을 책으로 썼다. 디자이너가 쓴 책답게 내지 디자인도 시선을 잡아끈다.
<나를 디자인하라>는 이메일 쓰기, 쇼핑, 섹스, 다이어트, 인간관계 등 우리가 살면서 행하고 접하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그의 철학 중 하나인 ‘뺄셈에 의한 덧셈을 잊지 마라’는 특히 인상적이다. 신제품을 하나 살 때마다 기존에 갖고 있던 물건 하나를 버리라는 충고다. 소유에 집착하지 말고 여유와 즐거움을 추구하라는 뜻이다. 수집품은 예외가 되겠지만 물건 하나를 들일 때 이미 있던 하나를 치우는 방식을 사용하면 과거의 물건에 둘러싸여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쇼핑을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할인판매. 제철에 팔리지 않은 물건을 단순히 값이 싸다는 이유로 사놓고 쓰지 않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릎을 칠 이야기다. 사지 않고 지나치기엔 아깝다는 이유로 집에 들인 물건은, 이후 집안 물건 정리를 할 때 결국 당신을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다.
디자이너의 미적 감각을 중시하는 태도를 삶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화려함이 아니라 개성이라는 게 카림 라시드식 인생 디자인이다. 나 자신을 만들어갈 질 좋은 옷을 구입하는 게 1년만 지나면 못 쓰게 될 싼 옷을 쌓아두는 것보다 좋지만 디자이너 브랜드가 당신이라는 인간을 좌지우지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똑같은 것은 낭비다.” 책상 위는 텅 비어야 한다. 공간을 정리하는 일이 머릿속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나아가 당신이라는 인간의 이미지 향상에도). 단점을 보완하는 데 시간을 허비할 게 아니라 장점을 돋보이게 해 자신감을 키워라. 그래서 이 책이 자기개발서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지 않다’라는 경구나 ‘공공장소에서 섹스를 해보라’는 제안을 읽고 있자면 카림 라시드식 핑크빛 인생 설계에는 용기(혹은 위험)가 필수요소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