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어릴 적부터 혈육처럼 곁을 지켜준 상인(김태우)과 행복한 신혼을 보내던 모래(신민아)는 결혼기념일 선물을 사러 간 갤러리에서 낯선 남자와 주술에 걸린 듯 몸을 맞댄다. 상인은 모래의 고백에 충격을 받지만 묻어두기로 한다. 증권사를 그만두고 레스토랑을 개업하려는 상인은 프랑스에서 만난 요리 천재 두레(주지훈)를 아내에게 파트너로 소개한다. 그가 갤러리의 그 남자인 줄 모른 채. 셋의 동거는 평화롭지만, 모래는 여태 맛보지 못했던 감정의 태동을 느낀다.
<키친>의 ‘불륜’은 불행한 결혼으로부터의 탈주가 아니다. 모래 부부는 행복하다. 상인은 볕이 뜨거운 날이면 아내가 아이스크림이라도 되는 양 “이러다 녹겠다”라고 말하는 남편이다. 모래는 남편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아 숟가락 모양으로 밀착하기를 좋아하는 아내다. 상인과 모래처럼 근친애에 근접하는 뿌리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결혼조차 구속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독은 주목한다. 모래의 외도는 이를테면 카뮈의 <이방인> 스타일의 사고(事故)다. 우연히 숨어든 벽의 좁은 틈새에, 남자가 숨결이 닿는 거리에 서 있었고 햇살은 너무 달콤해서 생긴 일이다. 모래에게 상인이 변함없는 울타리라면 두레는 예측 불가능한 모험과 관능을 대변한다. 남편에게 상처를 주기는 싫지만 사랑이라는 기적이 삶에 찾아왔는데 왜 모른 척해야 하는지 모래는 진심으로 납득하지 못한다. 함께 있으면 인생이 즐거운 동반자 셋이 소유욕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야 옳은 일일까. 남자들이 고민할 차례다.
<키친>은 결혼의 정절 서약에 우선하는 행복을 향한 욕망을 먹는 일에 비유한다. “당신을 먹고 싶어”라는 대사가 때때로 등장하고, 모래는 두레와의 정사를 “이상한 맛”이었다고 회고하며, 세 남녀의 공존은 부엌의 공유로 표현된다. 그러나 상인의 레스토랑 개점을 둘러싼 플롯은 심심한 편. 두레 몫인 프랑스어 대사와 노래도 효과보다 역효과가 크다. 주제에 애착한 나머지 대사가 너무 의미심장하고 인물과 환경이 목표에 맞게 최적화된 인상을 주는 점도 생기를 앗아갔다. 모래의 직업은 수제 양산 디자이너지만 손님이 뜸하다. 홍지영 감독이 각색에 참여한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가 그랬듯, <키친>도 세상의 따가운 통념으로부터 주인공들을 감싸줄 오붓하고 쾌적한 양산 그늘을 몽상한다. 하지만 양산은 민감한 피부를 지닌 사람들에게만 긴요한 물건 취급을 받는다. 모래의 양산 가게와 상업영화 <키친>이 당면한 고민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