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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의 파멸을 통해 본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선 <레저베이션 로드>
이화정 2009-01-28

synopsis 아들 딸, 아내와 단란한 행복을 누리던 에단(와킨 피닉스) 가족은 피크닉을 다녀오던 중 레저베이션 로드에서 뺑소니 사고로 아들을 잃는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에단 가족은 무참히 무너져내린다. 아내 그레이스(제니퍼 코넬리)가 딸을 위해 마음을 다잡는 반면, 에단은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찰 대신 아들을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직접 나선다. 한편 에단처럼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뺑소니 사고의 가해자인 드와이트(마크 러팔로)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에단 가족의 주위를 맴돈다.

<레저베이션 로드>의 시작은 뺑소니 사고로 순식간에 아들을 잃는 데서 시작된다. 여느 영화처럼 아들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도 없고, 떠나간 아들을 추억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이미 상황은 종료됐다. 남은 것은 벌어진 사태를 두고 대처하는 각 인물들의 입장,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는 그들 각자의 고통이다. 테리 조지 감독은 잔인할 만치 사실적으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낸다.

자신의 말 때문에 아들이 반딧불이를 놓아주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믿는 엄마 그레이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남은 딸을 보살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자신을 추스른다. 정작 아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사고 당시 평정을 유지했던 에단이다. 그는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를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최고형이 10년형에 불과한 사법제도에 처벌을 맡기는 대신에 자신이 직접 복수에 나설 결심을 한다. 한편에는 가해자인 드와이트가 있다. 아들과 함께 야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저지른 끔찍한 결과 앞에서 그는 대처할 바를 모른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 겪는 죄책감의 비중도 피해자와 같은 크기다.

원작자인 존 번햄 슈워츠를 각본가로 영입한 테리 조지 감독은 한 가족의 파멸을 통해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선인 슬픔, 분노, 복수에 대해 말한다. 교수로 재직 중인 에단의 강의 중 한 학생의 발언처럼 정치적,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제3국의 나라들과 달리 대다수 미국인에게 고통이나 죽음은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유보된 거리’ 레저베이션 로드를 사이에 두고, 감독은 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어느 순간이든 깨질 수 있는 위험물이며, 현실은 어떤 방식으로든 닥쳐온 고통을 헤쳐나가야 함을 설파한다.

<호텔 르완다>로 투치족의 대량학살의 기억을 기록한 테리 조지 감독의 방식은 이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비극을 지켜보게 만들고 슬픔을 느끼게 하지만, 이 영화의 지향점은 그곳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감독은 단순히 현상을 슬퍼하는 데서 나아가 우리 안의 공포를 들여다볼 것을, 생각할 것을 권유한다. 감독은 마음속에 있는 끔찍한 정글로 배우들을 내몬다. 캐릭터의 감정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리허설 하나 없이 슛과 함께 그들을 처절한 번뇌 속으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제니퍼 코넬리와 와킨 피닉스, 마크 러팔로의 몰입된 감정 연기는 이 영화를 만드는 90%의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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