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 충동…. 그렇다. 갑자기 효자가 돼야겠다는 억누르기 힘든 강력한 충동이 밀려왔다. 그래, 이제부턴 어머니에게 하루에 한번씩 안부전화를 해야지! 용돈도 더 드려야지!! 고향집에도 자주 내려가야지!!!
불행히도,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는 동안에만 잠시 그랬다. 소설 속의 어머니가 가슴아파서였을 거다. 한없이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지만, 늘 그렇듯 자식들의 공동 무관심 속에 방치된 외로운 어머니. 문맹인데다 치매까지 겹쳐 서울로 올라오다 길을 잃고 실종된 어머니. 그 어머니를 향한 애잔한 감정이 현실 속의 어머니에게 이입된 것이다. 하지만 소설이 200여쪽에 이를 무렵, 그만 책을 덮고 말았다. 큰딸과 큰아들에 이어 아버지의 회상이 절정으로 치닫는 대목부터였다. 어머니가 가족들 모르게 소망원에 돈을 보내고 봉사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신파의 낌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마더 테레사 같은 성녀란 말이더냐? .
대신, 집에 있는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효도 충동’에 관한 한 훨씬 끝내주는 책이다. 바로 어머니의 일기장이다. 소설의 어머니가 아닌 현실의 어머니는 내가 세상에 나오기 이틀 전부터 약 2년 동안 거의 매일 육아 일기를 썼다. 그걸 한권의 책으로 남겼다(훗날 자신의 모성과 육아로 인한 고통을 효과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의도였는지 어땠는지^^). 내 처지에선 가슴이 찡하다. 그 책을 다시 읽어보니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1967년 5월22일 월 맑음. 젖이 부족해서 아이가 축이 갔다. 저녁때 극장에 갔다. 갑자기 어두운 곳에 들어가니 운다. 울까봐 겁이 났는데 끝날 때까지 잤다. 크레오파트라. 3시간 반 상영이다. 집에 오니 11시 반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출연했던 <클레오파트라>. 물론 백일도 안된 아기였던 내가 본 것은 극장의 어둠뿐이었다. 다시 헤아려보았다. 어머니와 함께 본 영화가 있던가? 딱 한편이었다. 2003년 추석 때 개봉한 김승우·김정은 주연의 <불어라 봄바람>이었다. 가족들이 모인 뒤 누군가의 제안으로 가까운 멀티플렉스를 찾았고, 시간대에 맞게 대충 골랐던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굉장히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육두문자와 야한 장면이 튀어나올 땐 민망하기도 했다. 독자 여러분은 어머니와 평생 몇편의 영화를 보았는가.
명절이다. 가족들이 다시 모인다. 그러니까 어머니 손잡고 영화를 보러 가자, 라고 주장하는 건 촌스럽다. 그래도 혹시 효도 충동이 밀려온다면, 극장에 모시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