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석할 수 없는 두 집단이 만났다.” 지난 1월15일, ‘영화 저작권 침해 방지와 온라인 부가시장 확립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이준동 제작가협회 부회장이 한 말이다. 이날 기자회견은 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와 웹하드 업체의 연합체인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DCNA)가 “이제부터 공생의 길을 가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겠다”고 만든 자리였다.
영화인들은 그동안 한국영화의 수익률을 논하는 자리면 언제나 “지금 영화수익의 80%가 극장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설명을 붙였고, 그때마다 부가판권시장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영화인들은 부가판권시장을 죽인 범인이 온갖 불법복제파일을 빨아들인 뒤 돈을 받고 내뱉는 웹하드라고 했으니 이준동 부회장의 말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물론 웹하드가 영화계와 공생의 길을 찾게 된 배경에는 분명 더이상 불법파일을 방치해서는 잘살아갈 수 없을 것이란 두려움이 있다. 사정이야 어찌됐건, 두 집단이 동석한 것은 영화계나 IT업계로서나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해 볼만한 자리였을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동석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계가 지난해 3월, 웹하드 업체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때 구성한 원고단은 제작사 및 투자·배급사, 외화수입사를 비롯해 총 35개 업체였다. 이중 DCNA와 합의하는 일에 뜻을 더한 업체는 약 20개. 15개 업체가 동석하지 않은 것이다. DCNA 또한 모든 웹하드 업체의 뜻을 모아 합의에 이른 것은 아니다. DCNA의 양원호 회장은 “현재 영화계와의 합의를 받아들인 웹하드 업체가 전체 트래픽의 80~90%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업체들도 꾸준히 합의를 원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영화계와 합의하지 않으려는 웹하드 업체들은 협회안에서 제어해갈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영화계쪽에서 동석하지 않은 업체들이다. CJ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몇몇 투자·배급사들이 대표적이다. 영화계에서는 이들이 독자적인 다운로드 사업모델을 구상하기 때문에 합의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들은 원고단이 소유권을 주장한 영화판권 가운데 50%를 갖고 있다. 합법 다운로드 서비스를 구축하더라도 이들의 참여가 없다면 반쪽뿐인 합의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으로는 자사의 이익을 위해 자사의 권리를 이용하는 것인데, 도의적인 책임 말고 다른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기업의 생리가 그러하니 도의적인 책임도 묻기 힘든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에 대해 차승재 제협 회장은 그렇지 않다고 못박았다. “투자·배급사들이 가지고 있는 판권은 어디까지나 제작사와 5:5로 나눈 것뿐이고, 다만 투자·배급사들이 판권 영업업무를 대행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투자·배급사들은 수익이 날 수 있는 곳에는 영업을 해서 매출을 극대화하는 것이 의무라는 이야기다.
이준동 부회장은 “그동안 온라인 VOD시장도 있었고, 지난해 4월부터는 합법 다운로드 시스템도 마련됐지만 CJ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제외하곤 한번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의무를 회피하는 것과 다름없다. 직무유기다. 심하게 말하면 정서적인 배임이다. 앞으로 그들이 자사의 계열사로만 판권을 내놓거나 한다면 문제제기를 할 것이다.” 정녕 영화계 모두가 동석하는 것은 웹하드 업체와 동석하는 것보다 힘든 일일까. 이번 제협과 웹하드 업체의 합의는 앞으로 발생할 또 다른 공방전을 예고한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