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심호흡부터 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읽고 나니 불 켜진 극장 안에 혼자 남은 듯 머리가 얼얼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혀 같다. 이야기를 삼키고 역사를 삼키고 정치를 삼키고 그 땅에 사는 인간의 삶을 삼켜 토해내는 붉은 혀. 주노 디아즈의 첫 장편소설인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그 탄생에 걸린 11년조차 너무 짧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고 완벽하다. 저주와 마녀가 그 힘을 잃지 않은 땅 도미니카 산토도밍고에서 시작된 오스카의 선조 데 레온 가족의 피와 체액이 흐르는 연대기가 시공을 넘나들며 이어진다.
오스카는 저자 주노 디아즈와 여러 면에서 겹치는 역사를 가진 젊은 도미니카계 미국인이다. J. R. R. 톨킨을 꿈꾸는 체중 140kg의 오스카는 도미니카계 남자라고 믿을 수 없게도, 동정이다. 동정없는 세상에서 홀로 동정인데다 코믹스와 판타지, SF소설에 빠져 살며 말은 <스타트렉>에 나오는 컴퓨터처럼 하다 보니 친구도 없다. 그와 대학 기숙사 방을 함께 쓰겠다고 나선 유일한 사람은 오스카의 누나 롤라에게 반한 유니오르인데, 그가 이 책을 끌어가는 화자다.
미국에서의 이들 삶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독재자 트루히요하에서 살아야 했던 그들의 어머니, 할아버지의 삶으로 건너간다. 주노 디아즈는 어째서 인간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를 정치 때문에 자유를 박탈당했던 오스카의 할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로 들려준다. 정치와 멀리 있었음에도 정치 때문에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긴 이들. 하지만 갈비뼈가 부서지고 두개골이 뭉개지는 순간에조차 비꼬고 풍자하는 화자의 혀는 멈추지 않는다. 이야기를 접하는 독자가 독재자 치하의 사람들처럼 화자 1인의 의견만 접할 수 없다는 주노 디아즈의 신념은 도미니카의 역사와 트루히요에 대한 독재에 얽힌 작가 주석을 권말에 두툼하게 달아놓았다. 그마저도 재미있다. 거시사와 미시사, 국가의 운명과 개인의 운명이 맞물려 돌아가는 양태를 기록한 책이기도 한 셈이다. 내용과 형식에서 두루.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퓰리처상을 비롯해 미국비평가협회상 등 다섯 손가락으로 꼽히지 않을 정도의 상을 수상했고 아마존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휩쓸었다. 닉 혼비는 “최근 책들 가운데 이 책과 견주어 나가떨어지지 않은 책을 생각해낼 수가 없다”라고 이 책을 추워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