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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단편] 홍대신 총정리는 계속된다
이주현 2009-01-13

오근재, 심건 감독의 <la via show 04 pika>

미니 신시사이저와 앰프를 만지는 여자의 손이 보이고 ‘뮤직 퍼포먼스 다큐멘터리 온 더 스트리트’라는 자막이 깔린다. 이어서 <la via show 04 pika>라는 커다란 글씨가 화면을 덮으면 이제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된다. 무대는 어느 지하도의 바닥, 어두운 술집 안, 그 술집의 화장실이다. 공연이라고 해서 연주에 몰입한 뮤지션과 그에 열광하는 관객의 모습을 상상하면 안된다. 연주에 몰입한 뮤지션은 있지만 관객은 없고, 자연조명과 실내조명으로 만들어진 기괴한 이미지와 분위기는 있지만 보여주기 위한 쇼나 연출된 몸짓은 없다. 라비아쇼 네 번째 작업의 주인공, 뮤지션 피카의 노래 3곡이 그렇게 차례로 이어진다.

KT&G 상상마당 이달의 단편 10월 우수작 중 한편인 <la via show 04 pika>를 쉽게 뮤직비디오나 라이브쇼로 정의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뮤직 퍼포먼스 다큐멘터리 온 더 스트리트’라고 길게 장르를 설명하기엔 또 거추장스럽다. 그렇기에 그저 ‘라비아쇼’라고 부르면 족할 것이다. 길거리에서 어쿠스틱 라이브로 공연하는 뮤지션의 모습을 원테이크로 카메라에 담아낸 영상물, 라비아쇼라고 말이다. 라비아쇼는 홍대에서 ‘잔’이라는 이름의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심건씨와 대학에서 영상 디자인을 전공한 오근재씨 두 사람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다. 두 사람은 어느 날 심건씨의 집에서 카메라로 “방구석 라이브” 수준의 영상물을 재미삼아 찍다가 “의외로 괜찮은 퀄리티가 나오자”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고, 그 첫 번째 ‘마루타’로 심건씨의 길거리 공연 모습을 오근재씨가 카메라에 담으면서 시작됐다. 마이크를 든 형과 카메라를 든 동생의 상호보완적 관계 속에서 점차 발전해나간 라비아쇼는 그동안 신재진, 골든팝스, 피카, 우주히피와 작업하며 결과물을 하나씩 블로그에 내걸었다. 그중 골든팝스와 피카와의 작업은 상상마당 이달의 단편 2008년 6월과 10월 우수작에 각각 선정됐다.

작업은 뮤지션 선정, 노래 선정, 장소 섭외, 뮤지션과의 미팅 그리고 촬영과 편집 순으로 진행된다. 홍대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뮤지션이라면 문제는 없지만 언플러그드 쇼이기 때문에 “오디오가 허락하는 뮤지션”이라는 제약은 있다. 일렉 기타나 드럼이 들어가면 힘들다는 얘기다. 하지만 “오디오보다 비디오에 어려운 게 더 많다”고 한다. 그들이 가진 장비는 핀 마이크와 카메라뿐이고 도입부를 빼고는 원테이크로 찍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장면을 오리고 붙일 수가 없다. 또 낮이건 밤이건 실내건 실외건 조명도 일절 쓰지 않아서 밝은 곳에서 찍고 싶으면 조명을 밝히는 게 아니라 밝은 곳을 찾아다니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좋은 장소를 찾는 데 고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모든 것을 자체 충당해야 하는 소규모 가내 수공업 수준이지만 그들 스스로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은 창작의 쾌감을 맛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그룹 라비아쇼의 멤버 오근재(왼쪽), 심건 감독.

최근에는 상상마당 음악영화제를 통해 색다른 경험을 했다. 영화제에 라비아쇼의 작품이 상영된 것. 이제까지 완성된 작품을 1시간20분 분량으로 묶어 스크린에 걸었다. 그러나 결과는 지루함과 민망함 정도였다고. “극장 상영용으로 만든 게 아니라 UCC용으로 만든 거라 포맷 차이가 있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마스터링을 거친 오디오 포맷을 극장에서 트니 소리가 너무 커 귀가 힘들었다. 또 노래의 처음과 끝에 라비아쇼의 커다란 자막이 들어가는데 그 자막을 곡이 끝날 때마다 반복해서 본다고 생각해봐라. 내가 봐도 조금 지루했다.”(심건)

특별히 돈이 되는 일이 아님에도 이들이 라비아쇼 활동에 집중하는 이유는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꾸준히 뮤지션들의 공연을 찍게 되면 언젠가 (홍대신을 총정리한) 사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뮤지션들을 보려면 라비아쇼 홈페이지에 가서 동영상을 보면 된다’고 사람들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오근재)

수익창출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조바심내지 않고 활동하다보면 “때가 올 것”이란 그들의 철석같은 믿음을 믿어봐도 좋겠다. 어쨌든 이들의 본업 아닌 본업으로서의 라비아쇼 활동은 계속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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