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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웹하드 다운로드 합법화로 가자”
강병진 2009-01-13

영화제작가협회, 불법파일 유통 관련 공판 앞두고 투자·배급사들 설득중

합의할 것인가, 단죄할 것인가. 2008년 6월16일, 나우콤 등 5개 웹하드 업체의 대표가 불법복제된 영화파일이 유통되도록 조장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그로부터 약 7개월 뒤인 지난 1월6일, 이 사건의 원고쪽인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영화인협의회 소속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관계자들이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 회의실에 모였다. 오는 1월15일 열리는 형사선고공판을 앞두고 원고들간의 이견을 좁히기 위한 자리를 연 것이다. 제작사를 대표하는 제협쪽은 합의를 통해 웹하드 업체를 합법 다운로드 시스템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일부 투자·배급사들은 합의시점이 성급하다는 것과 합의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문화부 추산 매년 3천억원씩 사라지는 피해액을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예상과 웹하드 업체에만 좋은 일이 될 거라는 입장의 충돌이었다.

“한해 3천억원 손실… 합의로 피해 줄여야”

“지금 필요한 건 스피드다.” 차승재 제협 회장의 말처럼 합의를 서두르자는 쪽이 내세우는 명분은 조속한 부가판권시장의 안정을 통해 하루라도 빨리 피해를 줄이자는 것이다. 제협이 작성한 합의안은 피디박스와 클럽박스의 운영사인 나우콤의 문용식 대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골자는 크게 두 가지다. 합의와 동시에 과거 불법 다운로드를 방조해 저작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보상 및 배상할 것, 그리고 앞으로 합법 다운로드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책임이행을 성실히 할 것. 세부적으로는 향후 저작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보증금 2억원을 제협과 나우콤이 지정한 법무법인에 예치할 것과 검색 금칙어 등록, 저작권 침해 게시물 통지시 즉시 삭제 및 필터링을 통한 재유포 방지, 나우콤의 사이트를 단속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과 법률적 권한을 제협에 제공할 것 등이 명시됐다.

합의안을 준비한 영화사 봄의 조광희 대표는 “마이너스인 투자수익률을 끌어들이고,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부가판권시장을 살리는 것이 핵심적인 사안”이라며 “현재 시점에서는 DVD나 IPTV보다 다운로드를 합법화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만약 웹하드 업체를 법적으로 처벌할 경우, 결국에는 “상처뿐인 영광”만 남게 될 것이란 예상이다. 100여개 웹하드 업체가 활동하는 현 상황에서 그중 8개 업체를 재판으로 끌어들이는 데에만 1년이 걸렸고, 두 번째로 고소한 업체들도 6개 업체에 불과하다. 만약 1심에서 처벌이 확정된다고 하더라도 항소와 상고가 이어지면 재판당 2년에서 3년의 시간이 걸린다. 모든 웹하드 업체를 고소해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빨라도 5년이고, 10년이 걸려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게 제협의 입장이다. 불법 다운로드로 매년 3천억원가량의 저작권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몇년씩 걸려 배상을 받는다 해도, 시간과 노력만 들일 뿐 남는 게 없을 거란 것이다.

조광희 대표의 말에 따르면, 합의 제안은 나우콤의 문용식 대표가 먼저 건넸다. 이어 나우콤 이외의 다른 웹하드 업체에서도 합법적인 서비스로 가겠다는 제안이 더해졌다. 제협쪽은 나우콤뿐만 아니라 웹하드 업체의 연합체인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DCNA)와의 합의를 통해 약 40개의 웹하드 업체를 합법 다운로드 시스템으로 이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한구 제협 부회장은 지난해 10월과 11월 동안 웹하드 업체를 모니터링한 결과, “소송 중인 웹하드 업체는 적발건수가 감소했지만, 이 시기를 틈타 다른 웹하드 업체의 적발건수가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조광희 대표는 “일부 웹하드 업체와만 합의할 경우에는 합법 다운로드에 나선 이들과 합의에 나서지 않은 웹하드들이 이용요금 면에서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될 수 있는 한 많은 업체와 합의를 통해 그들이 서로를 견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원고단 소속 10여개 업체는 이 합의안에 동의했다. 하지만 제협의 합의 계획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에 대해 의심하는 쪽도 있다.

“선고로 웹하드 압박해야” 의견도

현재 온라인상에서 영업하는 웹하드 가운데, 실질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하는 업체는 약 80개다. 이날 회의에서 디씨지플러스의 김성환 기획팀장은 “80개 가운데 40개 업체와 합의를 한다면 나머지 40개 업체가 다시 상위를 차지하지 않겠냐”며 풍선효과가 반복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합의가 형사선고에 끼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CJ엔터테인먼트의 이재필 대리는 “합의를 해줄 경우 처벌수위가 약해지면 결국 웹하드 업체에만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며 “합의를 하더라도 선고 뒤에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웹하드 업체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판례가 중요하다”는 쇼박스 임현준 대리의 의견도 이를 뒷받침한다. 법률적으로 구체적인 결과물을 얻어낸 뒤, 그것을 통해 웹하드를 압박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여한구 제협 부회장은 “합의는 민사상에서만 이루어질 뿐 형사상 고소는 처음부터 제외시켰다”고 말했다. “저작권 침해 중지를 요구한 업체 가운데 A사는 여전히 영업을 지속해 현재 가장 많은 적발건수를 기록하고 있다. A사는 이번 합의에서 배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웹하드 업체를 견제할 판례는 A사의 소송판결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광희 대표는 “합의를 한다면 형사상 양형사유가 될 뿐”이며 “그렇다고 해서 선고 뒤로 합의를 미루게 되면 웹하드 업체의 입장에서 합의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질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또한 합의 대상의 범위가 적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합의로 끌어올 웹하드는 40개 업체이지만, 저작권 침해 양을 봤을 때 이들이 80, 90%를 차지하고 있다”며 “합의를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합의안에 명시된 대로 협력원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감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구체적인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을 일정 부분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여한구 부회장은 “시장의 지각변동을 위해서는 힘이 필요한데, 판권비율이 50% 이상인 메이저 배급사의 대승적인 결정이 필요하다”고 부탁했고, CJ엔터테인먼트의 박철수 팀장은 “여전히 최고의 형량을 받게 해서 판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대기업이 이러한 대승적 결정을 해달라는 요구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합법 다운로드 시스템의 필요성은 어느 쪽이든 인정하는 부분이다. 다만 시장 진입이 쉬운 웹하드사업의 속성과 그동안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입은 피해액들을 생각할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란 문제에 온도차가 있는 셈이다. 지금 필요한 것이 스피드인지, 아니면 웹하드를 견제할 수 있는 처벌근거인지 입장은 다르지만 합법 다운로드 시스템 구축을 위한 논의가 한 단계 전진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올해는 부가판권시장 개선의 해”

조광희 영화사 봄 대표

-1월6일 회의 뒤 원고단의 의견은 어떻게 조율되고 있나. =회의 뒤에 다시 투자·배급사쪽 실무자들과 통화를 했다. 여전히 이견은 있지만 제작사들이 의견에 대한 이해는 높아졌다. 큰 틀에서는 불법복제 방지를 위해 공조를 하는 게 좋겠다는 입장이 받아들여진 것 같다.

-얼마만큼의 업체가 동의해야 합의안이 효력을 갖는가. =정해진 비율은 없다. 다만 웹하드 업체에는 이번 합의가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한국영화계의 상당수가 과거를 정리하고 합법 다운로드로 나가는 것에 동의했다는 의미니까. 이번 주말이 되면 동의한 업체의 구체적인 비율이 드러날 것이다.

-이번 합의에서는 영화인뿐만 아니라 웹하드 업체의 의지도 중요해 보인다. =한번에 모든 웹하드 업체와 합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현재로서는 순차적으로 합의에 참여할 것 같다. 하지만 합법 다운로드 시장을 창출하는 게 첫 번째 목표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들을 견인하는 게 중요하다. 합의에 참여한 웹하드 업체 입장에서도 더 많은 웹하드가 포함되길 바라고 있다. 불법 다운로드를 방조하는 업체와는 일단 이용요금에서 경쟁이 안되기 때문이다. 합법 다운로드 서비스에 대한 관심은 충분히 높다.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이후 진행사항은 어떻게 되나. =시간은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선은 열흘 내에라도 제협과 웹하드 업체, 그리고 양쪽이 지정한 변호사로 구성된 협력위원회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모니터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시간이 걸리겠지만, 모니터링은 지금도 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구체적인 시기는 단정할 수 없지만,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2009년은 부가판권시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한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