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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제발 인도네시아영화를 보여줘라

자카르타영화제에선 잘 틀지 않고 영어 자막도 없어 DVD를 사모으다

자카르타의 거리 풍경.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가장 유연한 이슬람 국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자카르타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인도네시아에 갔다. 영화 프로그래머로서 가보지 않은 나라의 영화는 선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 여행은 늦은 감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수는 매해 두배씩 증가하고 있으며 2008년에는 약 100편의 장편영화가 만들어졌다.

인도네시아 영화의 자국시장 점유율은 2006년 34%에서 2008년 50%를 넘어섰다. 그러나 매주 두편의 자국영화가 개봉함에도 아직 박스오피스에서 이익을 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2008년 두편의 최고 흥행작은 이슬람 멜로드라마인 <아얏 아얏 친타>와 <라스카 페랑기>로 관객을 거의 독점했다.

인도네시아는 모슬렘 인구가 2억명이 넘는다. 세계에서 무슬렘 인구가 가장 많은 이슬람 국가인 동시에, 가장 유연한 이슬람 국가이기도 하다. 다른 인기 장르는 <퀴키 익스프레스> <익스트라 라지>와 <내 이름은 딕> 같은 섹스코미디영화들이다. 젊은 관객을 겨냥한 10대 공포물과 고등학교 로맨스물 역시 인기있는 장르다.

자카르타국제영화제에서는 인도네시아 상업영화들의 상영 일정이 서로 겹치고 또 절반 이상의 영화에 영어자막이 없다. 외국 게스트로서 영화들을 모두 섭렵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상영 일정 탓에 심사위원들조차 경쟁부문의 인도네시아영화를 영화제 디렉터의 사무실에서 DVD로 보아야 했다.

한국의 영화제들이 자신있게 한국영화를 광고하는 데 반해 자카르타영화제는 자국영화를 한구석에 숨겨놓는 것 같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금전문제다. 영화제에서 자국영화를 상영하면 입장료를 받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영화제쪽에서는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생각으로 자국영화들을 저녁의 황금시간대 상영에서 빼버렸다.

영화감독들은 다른 감독의 영화 상영에 모습을 보이는 등 자주 눈에 띄었지만, 막상 상영된 영화의 감독과 스타를 관객이 만날 기회는 드물었다. 영화산업에서는 세대간 구분이 명확했다. 영화산업이 쇠약해지자 TV쪽으로 옮겨간 프로듀서들과 영화산업을 되살리는 신세대들.

자카르타 극장에서는 자국영화를 영어자막 없이 상영하는 반면 DVD의 95%는 한국처럼 영어자막과 함께 출시된다. 가장 최근작인 DVD도 5천원을 밑도는 가격에, 오래된 영화들은 2천원이 안되는 가격에 팔고 있다. 자카르타에 있는 동안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구할 수 있는 모든 적법한 DVD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DVD는 저렴한 대신 결함이 있는 것들이 많았다. 내가 산 DVD의 약 20%는 잘못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철저한 저작권 보호 시스템 때문인지 제대로 재생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이미 보편화된 고화질 듀얼 레이어 DVD9 디스크는 찾아볼 수 없었다. VCD도 꽤 인기가 있어서 신작의 경우 DVD로 출시되지 않고 VCD로만 출시된 타이틀들도 있었다.

이번 영화제는 25만달러라는 저예산으로 운영되었다. 2006년 60만달러였던 예산이 2008년 10월 스폰서가 모든 지원을 철회하면서 대폭 삭감된 것이다. 그래서 원래 열흘이었던 영화제 기간도 갑작스레 닷새로 줄여야 했다. 열한번째를 맞는 2009년 영화제 때는 기간을 최소 7일로 늘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자국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좀더 키운다면 자카르타영화제는 올해에도 분명 참석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번역 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