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영화비평이 아니다. 영화를 매개로 이미지와 철학을 이야기하는 가능성의 탐색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매진>은 미학자 진중권의 필력을 확인할 좋은 기회다. 진중권은 짧지 않은 프롤로그를 통해 새로운 영화 담론의 가능성 탐색이라는 면에서 이 책에 실린 글을 몇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매트릭스>에서는 영화의 미래를 내다본다. 구석기인들이 동굴 벽에 수많은 동물을 그려놓고 그게 현실이 될 거라 믿던, 가상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법이 점차 진화해 복제 이미지(사진)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으로는 생성 이미지 시대에 가상을 만드는 가상현실의 테크놀로지에 이른다. <매트릭스> 1편에서 네오 일당은 신경에 직접 펄스를 주는 방식으로 가상세계에 입장하는데 그런 방식으로 뉴로시네마가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에서는 백일몽의 시각화, 즉 초현실주의의 흔적을 발견한다. 포스트모던 건축이라는 면에서 바라본 <블레이드 러너>는 시간이 지나도 그 아름다움과 혁신을 잃지 않는 시드 미드의 세트디자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가위손>과 히에로니무스 회화의 접점을 발견하는 일은 광물, 식물, 동물,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미지의 충격과 고딕적 미학에 대한 숙고로, 이야기와 이미지의 합일성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