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영국의 영화전문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동시대 평론가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평론가를 한명씩 추천받아 특집기사를 냈다. 여기에서 이언 크리스티는 영화평론가가 아닌 저명한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R. 다마지오를 꼽고 그의 글 ‘히치콕의 <로프>는 어떻게 시간을 늘어뜨리는가?’를 발췌하여 실었다. 이 글에 관해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일부나마 읽어보니 흥미롭다.
다마지오가 주목한 건 1966년 프랑수아 트뤼포와 앨프리드 히치콕이 나눈 인터뷰다. 히치콕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영화 <로프>(1948)에 관해 설명하며 “7시30분에 시작하여 9시15분에 끝나는 이야기”라고 두 차례나 표현했다. <로프>는 리얼타임에 가깝게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이 말은 곧장 상영시간 105분짜리 영화라는 말로 들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로프>는 거의 컷없는 10분짜리 릴 8개를 이어붙인 것으로 유명하고 실제 상영시간은 105분이 아니라 80분 또는 81분(도입부와 종결부의 크레딧을 포함할 때)이다. 그렇다면 자기 영화의 정보에 관한 한 컴퓨터처럼 정확하기로 소문난 히치콕이 중요한 인터뷰 자리에서 5분이나 10분도 아닌 자그마치 상영시간을 25분이나 착각해서 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인가? 그것도 인터뷰 중 두 차례나. 다마지오는 질문한다. “사라진 25분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다마지오는 히치콕이 왜 이 영화를 원래보다 긴 시간으로 착각하게 된 것인지 그 시간적 왜곡에 관해 가설을 제기한다. 히치콕에 관한 한 누구보다 예리했던 트뤼포가 듣고도 반문하지 않았고 히치콕 영화에 관한 수없이 뛰어난 저술가들도 묻지 않은 사소한 지점에 한 신경과학자가 질문을 품고 자기 식의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 일화를 소개한 이유는 한 가지다. 누군가의 모험적인 질문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영화를 생각하는 방식과 과정에 관련하여 이런저런 짧은 잡설을 쓰게 될 이 지면의 첫 시작으로 좋은 질문의 예를 소개하는 것 이상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 다마지오의 주장에 관해서는 다음 차례에서 보는 걸로 하고 질문부터 해보자. 그나저나 히치콕은 왜 착각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