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적인 예술가들은 언제나 매력적인 영화적 소재였다. 그들의 삶은 보통 사람의 그것보다 극적이게 마련이었고,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발현하는 과정에 이를 시기하는 세력의 암투, 운명적인 사랑 따위를 배치하면 썩 나쁘지 않은 작품 한편이 탄생하는 듯했다.
그렇지만 <사계>로 유명한 비발디의 인생은 사뭇 다르다. 우선 그는 가톨릭 교회에 철저하게 복종해야 하는 사제 신분으로 여자와의 사랑 따윈 꿈도 못 꾼다. 오페라 제작비를 모으기 위해 전전긍긍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교회에서 다달이 돈을 받아쓰는 생계 걱정없는 월급쟁이 음악가다. 게다가 약한 몸을 타고났기에 시종일관 창백한 얼굴에 기침을 달고 다니는데, 때문에 단조롭고 무성의한 로케이션 안에서 더더욱 생기를 잃어버렸다. <파리넬리> <글루미 썬데이>에서 또 다른 유형의 천재 음악가를 맡아 색다른 매력을 뽐낸 스테파노 디오니시는 이 영화에서 오래된 석고상처럼 굳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장 루이 기예르모 감독은 한 음악가의 삶을 적절히 요약해 적정한 예산으로 적당히 친절하게 보여주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영화 중간중간에는 주변 인물로 등장한 배우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이후 행적을 구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래서 영화적이라기보다 TV에서 방영되는 역사 재현극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비발디의 장례식에 당시 소년이었던 요제프 하이든이 합창단원으로 우연히 참석하기도 했다는 후일담 역시 내레이션으로 처리돼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끌어내기엔 힘이 달린다. 2007년 별세한 프랑스 배우 미셸 세로의 얼굴을 뒤늦게 본다는 정도가 주목할 만한 점이랄까.
전작으로 바흐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클래식 전문(?) 감독 장 루이 기예르모는 천재 작곡가의 예술과 죽음을 밋밋하게 끌어내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