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의 제작자인 이태헌 오퍼스픽쳐스 대표는 그동안 가려진, 숨겨진 인물이었다. <친절한 금자씨> <짝패> 등 그동안 제작했던 영화들의 면면을 보면 궁금증이 도질 만도 한데 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없었다. 직접 인터뷰 요청을 해도 그는 ‘다음에’라고 미뤘고, 그때마다 ‘박찬욱 감독과 인척 관계’이거나 ‘언론기피증의 소유자’라는 소문만 주변에서 덤으로 건졌다. 3년 전 오퍼스픽쳐스라는 새 보금자리를 만들고, 유나이티드픽쳐스라는 투자사까지 차린 이태헌 대표. 사실상 창립작인 <쌍화점> 개봉을 앞두고서야 그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기자 만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제작자라고 들었다. =내세울 게 없으니까 따로 만날 일이 없었다고 봐야지. 실제로는 ‘넌 어쩜 뻘쭘한게 없냐’고 타박을 듣기도 한다. 물론 앞에서 떠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개봉 전날이다. <쌍화점>은 사실상 오퍼스의 창립작이다. =관련자 중에선 내가 가장 여유롭지 않나 싶다. ‘속으로는 떨리고 두렵지?’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지만. 열심히 만들었으나 만든 뒤에 언제나 아쉬운 것이 영화 아닌가. 감독님한테도 진인사 뒤에 대천명하자고 그랬다.
-실제로는 유하 감독도 소심파 아닌가. 기골은 장대하시지만. =연출자 중에 대범한 분이 있나. 유하 감독님도 평균에서 약간 소심쪽이 아닐까 싶은데. (웃음) 편집할 때도 청소년 관람불가라서, 긴 러닝타임 때문에 뭐 이런 걱정을 달고 사셨다. 나는 시사 끝나고서도 외려 감독님 작품은 겪고 겪어야 정이 드는 애정 같은 거라고, 너무 연연 말라고 맘 편한 소리하고. 서로 거꾸로지.
-<쌍화점>이 잘돼야, 뭐 이런 식으로 주변에서 부담을 주기도 할 텐데. =바둑 둘 때랑 비슷하다. 구경하면 심리적 부담이 없어서 길을 꽤 잘 본다. 하지만 막상 상대를 앞에 두고 앉게 되면 그래서 내 돌 하나에 성패가 좌우될 수 있다는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덜컥 수’를 둔다. 순간 심리적 압박을 컨트롤 못하면 잘못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그런 점에 훈련이 꽤 되어 있어서 부담이 짐이 되진 않는다.
-러닝타임을 10분가량 줄였다. 유하 감독이 ‘제작자가 좋아할 것’이라고 했는데. =시사 전 편집 결과가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 상태로 개봉을 해도 자신있었다. 물론 두 시간 반을 물리적으로 견디기는 쉽지 않다. 머리는 괜찮은데 몸은 달려나가고 싶으니까. 하지만 <쌍화점>은 간결한 행동과 사건 위주로 진행되다가 일정 시간이 되면 끝을 내줘야 하는 그런 패턴의 영화는 아니다. 흥행이야 누구도 모르는 것이고. 내 입장에선 기승전결식의 내러티브 구조를 제대로 갖춘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제작자로서 <쌍화점>의 흥미로운 지점은 무엇이었나. =정공법으로서의 서사. 사극은 가장 한국적인 장르이고. 이야기에 집중하는 유하 감독이 가장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서사인 멜로드라마라는 그릇을 내밀었을 때 요즘 관객이 어떻게 소비할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쌍화점>에 관한 평들은 좀 찾아서 읽어봤나. 당혹스러운 평은 없던가. =이야기가 없다, 또 성기다, 그런 반응들은 좀. 이야기가 많고 치밀하기 때문에 지루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장을 빨리 넘기고 싶은데 잘 안 넘어가는 소설도 있잖나. 그런데 외려 이야기가 없다고 하니.
-유하 감독은 어떻게 만났나. =모호필름에 있을 때 나인 디렉터스라는 법인체를 하나 만들면서 만났다. 근데 일종의 계약서에 내가 류하라고 써가는 바람에 감독님이 누가 내 성을 바꿔놨냐고 소리를 질렀지. (웃음)
-나인 디렉터스는 성과가 있었나. =프로젝트 회사 형태였는데. 지금은 휴업 상태다. <비열한 거리>를 비롯해서 <친절한 금자씨> <뜨거운 것이 좋아> <다세포 소녀> <행복> 등이 개발됐다. 지금 촬영 중인 <마더>도 결과물이고.
-나인 디렉터스를 만들었던 이유는 뭔가. =투자·배급사로부터 개발비 지원을 받으면 각각의 영화에 맞는 전략이나 제작 구조를 짜기가 어렵다. 권리 측면에서도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고. <친절한 금자씨>는 투자·배급사로부터 기획개발비라는 혜택을 받았지만, 동시에 박찬욱이라는 연출가가 자신의 재능과 기회를 일정 부분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영화는 콘텐츠고, 어떤 재능이 개입돼서 만들어지는 상품이다. 일반 물건들하고는 다르다. 영화마다 다 독특함이 있다. 그 독특함을 살리려면 개발비 조달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CJ나 쇼박스가 감독들의 개성을 말살한다기보다 그 회사들한테 개성을 살리는 영화만을 만들라고 요구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시기는 지명도있는 감독들이 아니면 기획개발비를 지급하지 않는 때이기도 했다.
-2005년 오퍼스픽쳐스를 만든 뒤, 2007년 10월에는 유나이티드픽쳐스라는 투자사까지 차렸다.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와 보경사의 심보경 대표와 함께 프로덕션을 갖고 있는 프로듀서들이 함께 만든 회사다. 오퍼스 만들고 난 뒤 자기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프로듀서들의 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다. 나인 디렉터스와 비슷한 형태였다. 14명의 프로듀서들이 처음엔 개발비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시작했는데, 나중에 맘에 맞는 사람들로 좁혀졌고 또 아예 자체 투자를 할 수 있는 회사 설립으로까지 가게 된 거다. 가만있으면 짐 싸거나 대기업에서 고용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제작사들에 비해 비교적 빠르고, 또 적극적으로 상황 대처를 한 셈이다. =한국영화의 호황이라는 게 산업적으로 건강한 체질의 결과라고 생각 안 했다. 외부 환경이 바뀌면 자생력이 없어지는 구조였으니까. 돈 없으면 모든 것이 공염불인데 그 뒤로 나인 디렉터스 때부터 함께했던 ECG, 웰스 브릿지, 이지컨텐츠미디어 등의 투자사들이 참여하면서 유나이티드픽쳐스의 재원이 마련됐다. 펀드는 출자자가 모두 도장을 찍어야 하는 구조라 불편함이 있어서 지분 투자 형태의 주식회사로 만들었다.
-투자작이었던 <고고70>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는 큰 수익을 안겨주지 못했다. <쌍화점>의 흥행은 영화사 집, 보경사 등의 제작사도 바라는 바일 텐데. =공동운명체라고 해야 하나. 제 영화처럼 돌봐주신다.
-세 제작사의 작품 외에도 투자가 열려 있나. =물론. 일단 우리가 시작한 것부터 마무리를 하자고 해서 그렇게 됐을 뿐 다른 작품들도 계속 보고 있다.
-오퍼스픽쳐스는 많은 감독들과 작업 중인 회사다. =많아 보이는 거다. 책임지지 못할 약속 해놓고 나중에 감독, 스탭, 작가 등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는 것을 전에 많이 봤다. 그래서 우리는 계약부터 한다. 계약도 하지 않고 집에서 시나리오 쓰는 감독은 없는 거지. 그러다 보니 사무실이 좀 북적거린다.
-장준환 감독도 한때 오퍼스픽쳐스에서 <파트맨> 개발을 했다. <타짜2> 연출을 위해 떠나서 서운할 것 같다. =서운한 건 아니고 많이 아쉽다. 굉장히 오랫동안 준비한 프로젝트였고, 장 감독의 영화를 꼭 내가 하고 싶었는데 정황상 그렇게 안됐다.
-모호필름이 첫 직장인가. =영화 일을 한 건 1997년 말이다. 그전에 에든버러에서 유럽영화 이론을 전공했다. 환율이 너무 올라서 공부를 더이상 할 수가 없는데, 마침 그때 이무영, 박찬욱 감독님이 외국의 유수 영화제를 돌면서 좋은 영화 있으면 선정하는, 아주 놀고먹는 일거리가 하나 생겼다고 하더라. 그렇게 해서 PMC프로덕션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보니 나 혼자여서 프린트 가격 써내고, 통관 서류 만들고, 보관창고 검수하고, 등급심의 업무 보고, 전단 만들고, 택시 타고 극장 다니면서 좀 틀어달라고 사정하고. (웃음) 2년 정도 있으면서 켄 로치의 <칼라송>이나 <에이미> 같은 영화를 개봉시켰다.
-영화이론 공부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철학과 졸업 뒤 무역회사에 다녔다. 1994년 여름이었는데 무척 더웠다. 삼성역에서 회사로 들어가는데 007 가방은 무겁고, 날씨는 덥고. 평생 이렇게 살 건가 싶더라. 곧바로 사표 내고 아내가 공부하던 영국으로 일주일 뒤에 떠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라는 것을 타봤다. 거기서 지내면서 도서관을 좀 다녔는데, 영국의 도서관들이 고풍스럽고 그래서 앉아 있으면 뭔가 대단한 공부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 대학 시절 관심이 있었던 문화이론, 그중에서도 가장 익숙한 영화를 택한 거다.
-들뢰즈와 슬라보예 지젝의 책이 꽃혀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네. =누가 인테리어 부탁한다고 하더라. 마치 다 읽고 꽂아놓은 것처럼 해뒀다면서.
-영화에 빠져든 건 박찬욱 감독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텐데. 같은 과 출신인데다 인척 관계이다 보니. =특수 관계이긴 하다. 나의 처를 처음 만났을 때 오빠가 곧 복학할 것이라고 들었다. 딱 보는 순간 소개도 안 해줬는데 아, 오빠구나 싶더라. 박찬욱 감독님은 나랑은 좀 다르다. 멋쟁이가 드물던 시절에도 멋쟁이로 지낸 분이고. 나는 시골에서 갓 상경한 것 같은 애였으니까. 학교 다닐 적에 어울릴 만한 상황이 아닌 거지. 그래도 직업으로 영화 만드는 일을 택하기까지는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
-모호필름이라는 둥지 대신 오퍼스픽쳐스를 차린 이유는. =<친절한 금자씨>를 내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는 <쌍화점>도 마찬가지다. 감독님들의 영화에 참여한 스탭이었던 거지. 내가 계획한 영화들을 만드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다.
-오퍼스픽쳐스에서 준비 중인 신작들을 소개해달라. =조창호 감독의 영화가 캐스팅 정리 중이다. 2월 정도에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듯하다. 에이즈에 걸린 마술사 겸 요리사의 사랑 이야기다. 이렇게 말하니까 무거운 느낌이 덜하지 않나? 윤재연 감독님이 준비하는 공포영화 <요가학원>이 캐스팅 정리되면 비슷하게 촬영 들어갈 것 같고. 구자홍 감독의 범죄물 <역습>은 지금 캐스팅 중이고. 이정범 감독 신작은 시나리오 수정 중이고.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아침에 출근이 이르다고 하더라. =PMC 때부터 생긴 습관이다. 일찍 출근해야 더 배우니까. 아침에 와서 법률 서적도 뒤적이고, 은행 사람이나 회계사 만나서 궁금한 거 물어보기도 하고. 잡스럽긴 해도 굉장히 부지런하게 다녔다고 생각한다. 다만 <쌍화점> 하면서 유하 감독님 작업 방식이 황혼에서 새벽까지다. 저녁에 나오셔서 이야기하다 보면 새벽 5시다. 잠깐 씻고 회사에 나오는 게 쉽지 않더라. 그러는 나를 보고 감독님은 만날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 새벽 1시만 되면 젊은 애가 비실거린다’고 하셨다.
-강혜정이 출연하는 <웨딩 팰리스>라는 합작 프로젝트도 진행 중인데. =몇년 전 알게 된 미국 프로듀서 친구가 한국계 감독이 시나리오를 들고 한국 간다면서 조언을 부탁했는데 그게 인연이 됐다. 배우는 누가 좋겠다 소개해주고. 길도 잘 모르니까 데려다주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만. 지금은 미국 촬영 분량이 끝났고, 한국 촬영 때 TPS와 같이 진행할 예정이다.
-CJ의 HD 프로젝트는 마무리된 건가. =적은 예산으로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보자, 규모를 무작정 줄이는 대신 새로운 매체로 접근해보자, 그렇게 시작해서 <짝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그녀는 예뻤다> <아버지와 마리와 나> 이렇게 4편 만들었다. 원래 7편 하기로 했는데 나머지는 어떻게 할지 이야기 중이다. 내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한다. 수익을 담보하지 못했으니까.
-일을 벌이는 건 타고난 것 같다. =프로듀서로서 다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색깔의 영화를 만들고 싶나. =내가 보고 싶은 영화지, 뭐. 범주로 치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1950, 60년대 프랑스영화 사이 정도고. 물론 좋은 영화와 내가 만들 수 있는 영화 사이에는 갭이 분명 있다. 지금 상태는 제작자로서 감독들한테 ‘이렇게 해서 장사 되겠어’ 한 뒤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서 졸다가 오는 것이 고작이지만. 다양한 영화를 생산하기 위해서 좀더 유연한 제작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게 내 일 아닐까 싶다. 노력해야 나중에 양로원에서 화투 치는 친구들이 어디 가냐고 물어봐도 일하러 간다고,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영화가 좋긴 좋구나’ 그런 말 듣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