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고 병적인 영화만 생산하는 기인 감독. 데이비드 린치를 그렇게 일축해온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사뭇 다른 인상을 얻을 터다. 영화 만들기와 창작 일반에 관한 짧은 에세이를 모은 <데이빗 린치의 빨간 방>에서 린치는 초월명상의 힘을 설파한다. 린치는 분노와 고통이 예술가의 창조력을 지탱한다는 통념을 힘주어 반박한다. 우울해서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겨운 사람이 무슨 에너지와 판단력으로 볼 만한 영화를 만들겠는가? 반 고흐는 불행해서 위대한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불행하지 않았다면 더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을 것이다! 린치는 확신을 담아 주장한다. 인생을 함부로 대하는 핑계를 예술에 돌리는 사이비 예술가들에게는 뜨끔한 이야기다.
아침저녁으로 20분씩 명상을 통해 체험하는 의식의 통일장은 어떤 고뇌보다 훌륭한 발상을 낚아 올려주며 심지어 즐겁기까지 하다고 린치는 증언한다. <듄>의 실패를 여태껏 곱씹는지 “명상은 최종 편집권을 갖지 못한 고통마저 견뎌내게 한다”는 그의 표현이 미소를 자아낸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 중 여러 편의 서두에는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이 인용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