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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숙명>의 수억원은 어디로 갔나
강병진 2008-12-23

‘제작비 미정산과 임금체불’ 이유로 제작사와 영화산업노조가 프로듀서 A씨 고발

끊을 수 없는 숙명인가 보다. 영화계의 제작비 정산과정에 대한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번에는 지난 3월20일에 개봉했던 영화 <숙명>이 논란의 대상이다. 영화산업노동조합은 지난 12월16일, 보도 자료를 통해 “영화 <숙명>과 관련한 제작방해·지연, 제작비 미정산 및 임금체불 원인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자 A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 고발했다”고 밝혔다. <숙명>으로서는 지난 11월, 일본 판권사와 제작사간에 있었던 계약분쟁 이후 한달여 만에 겪는 홍역이다.

영화산업노조가 밝힌 고소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2008년 초 영화산업고충처리신고센터(영화인신문고)를 통해 <숙명>의 임금체불 사건이 접수됐다. 당시 영화인신문고에서 확인된 체불액은 2억원 정도. 김윤태 영화산업노조 사무국장은 “<숙명>의 제작사인 MK두손코리아에 접촉해 임금체불 사실과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지의 여부 등을 확인했는데, 모든 책임을 제작사로 돌리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정산과정이 정상적이지 못했다. 영수증이 없거나 구체적인 사용내역이 불분명한 금액들이 상당히 컸다.”

또한 노조는 총괄 프로듀서 A씨가 투자사 엔토리노와 감독과의 친분을 이용해 “제작비를 임의로 사용하거나 유용했다는 의혹”도 확인했다. 보통 제작총괄프로듀서가 투자사에 제작비를 요청하면, 투자사는 제작사의 승인을 거쳐 비용을 지급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숙명>의 제작현장에서는 제작사가 빠진 채, 투자사와 프로듀서 사이에 직접적으로 제작비가 오갔다는 것이다. 결국 노조는 제작비가 미정산된 탓에 스탭 인건비나 기타 채무 등을 제작사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고 판단, 총괄 프로듀서 A씨에 대한 제작사의 고소고발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당사자는 “무고죄로 고소” 맞대응 밝혀

이번 고소는 영화산업노조와 제작사 MK두손코리아가 함께 나서서 추진했다. 일반적으로 스탭들의 권익을 대변해온 영화산업노조의 활동사항을 염두에 둘 때, 이례적인 일이다. MK두손코리아의 강민 대표에 따르면, MK두손코리아는 그동안 A씨에게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정산을 요구했지만 A씨는 모든 정산을 다 끝냈다고만 일관했고, 그러던 차에 임금체불 문제를 확인하려던 영화산업노조가 3개월에 걸쳐 정산작업을 대신했다. 말하자면 이번 사안 자체가 전문적인 경험이 부족한 신생 제작사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강민 대표는 “우리도 경험이 부족해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객관적인 규명을 해달라는 뜻으로 고소를 진행했다”며 “오죽하면 제작사와는 상반된 입장을 가져온 영화산업노조에 정산을 부탁했겠나. 재판결과 우리쪽에 책임이 있다면 그때는 우리도 법적인 책임을 감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숙명> 촬영현장

또한 그는 제작과정에서의 A씨와 관련된 의혹을 더욱 구체적으로 제기했다. MK두손코리아는 <숙명>의 촬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즈음, 제작 중단을 결정했다. 투자사인 엔토리노쪽이 스탭들의 임금과 관련 제작비 지급을 미루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한 뒤 촬영을 재개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제작사의 뜻과 상관없이 촬영을 진행했고, 이 때문에 다른 곳에서 자금을 융통하는 한편, 건물 보증금을 빼서 제작비를 충당해야 했다는 것이 강민 대표의 설명이다. 결국 MK두손코리아는 현재 임금체불 문제뿐만 아니라 약 5억원이 넘는 부채에 시달리는 중이다. 개봉 뒤 나머지 제작비를 지급하겠다고 합의한 투자사 엔토리노는 <숙명>이 개봉한 지 열흘 만인 3월30일, 부도로 인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해외 판권료까지 제작사 지분으로 온 것은 없고 투자사가 가져다 썼다”고 말한 강민 대표는 “이 모든 사항이 A씨가 참여해서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파악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씨는 12월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입장을 발표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허위이며 거짓”이라고 밝힌 그는 “고소장을 언제 접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를 언론에 알려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보이게 한 것은 엄연한 명예훼손”이며 “진실 규명과 함께 무고죄로 고소하는 등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숙명> 제작에 대한 인건비 지급은 스탭들을 최우선시 했기 때문에 나의 인건비도 아직 받지 못했다”며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나 진실을 감추고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고 지급 의사도 없어 보이므로 제작사 대표를 노동청에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투자사가 자신에게 직접 지급했다는 촬영진행비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2007년 8월경, 영화 <숙명> 촬영 중 제작사가 행사를 진행하여 발생한 수익금의 반환문제로 투자사와 분쟁을 벌이던 중, 투자사가 영화를 12월에 개봉시켜야 하니 촬영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촬영진행비를 제작책임 또는 프로듀서를 통해 집행하겠다고 하여 (현장프로듀서에게)제작진행비로 전달한 것뿐인데 제작사의 허락이 없었다는 이유로 배임죄라 하는 것이다. 이 돈뿐만 아니라 주·조연배우 출연료와 스탭 잔금 일부분도 투자사가 직접 집행했다. 투자사로부터 지시된 것에 대한 사실 확인서도 받아놓았다.” <씨네21>과의 전화통화에서 A씨는 “나도 을의 입장에서 제작사와 계약한 스탭이다. 편할 때는 권한을 가지고 있던 제작사가 이제 와서 모든 책임을 나한테 떠맡기는 지금의 상황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산관리 시스템에 관한 불신도 문제

영화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향후 영화산업 시스템의 합리화를 위해서라도 꼭 규명되어야 할 의혹이라고 말한다. 영화산업노조와 함께 공동 보도자료를 발표한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등은 “이 문제가 작금의 영화산업 위기를 극복하려는 업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중대한 사안임을 인식하고 이런 부조리를 뿌리까지 발본색원하고자 하며, 특히 영화산업노사는 영화스탭들의 임금체불은 영화산업의 공익성을 해치는 기초요인이라는 판단 아래 유사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정부출연 출자조합 결성시 임금체불 관련 제작사의 투자제한 조치를 적용할 수 있도록 관련부처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 A씨는 자신의 의견에는 귀기울이지 않은 채 “MK두손코리아의 이야기만을 듣고 편파적으로 제작사만의 입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 한국영화의 위기를 초래한 요인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는 ‘신뢰’문제다. 관객이 한국영화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도 있지만, 자금을 쥔 투자사들이 한국영화계에 만연해온 불분명한 정산관리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재판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이번 사건은 신뢰회복에 나선 한국영화계로서는 눈길을 거둘 수 없는 일인 듯 보인다.

<숙명>의 총괄프로듀서 A씨 인터뷰

“제작비 추가분이 미지급됐을 뿐”

-<숙명>의 제작과정에서 맡았던 역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총괄프로듀서로서 제작비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하는 역할이었다. 배우 개런티나 스탭들의 임금도 투자사의 예산으로 제작사가 받아서 지급했다. 제작비를 만지지도 않은 나에게 이런 모함을 하는 것이다.

-사건의 시작은 임금체불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가. =정확히 말하면 추가임금이 미지급된 것이다. 계약금과 잔금은 모두 나갔다. 조명을 더 쓰고, 스턴트 분들이 더 나오면서 생긴 추가분이다. 원래는 투자사가 개봉 뒤에 주겠다고 제작사와 합의했는데, 결국 투자사인 엔토리노가 망하면서 못 주고 있던 것이다.

-제작사는 제작비 정산을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하던데. =정산은 제작부의 영역이고 정산 담당자인 제작실장이 모두 해줬다. 물론 정산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나 있다. 1차적으로는 돈을 쓴 사람이고, 2차적으로는 돈을 준 사람이다. 그외에 제작비를 결제하거나 관리하는 사람과 제작사, 투자사에도 책임이 있다. <숙명>에서는 제작사의 이사와 부사장도 함께 관리했다. 말하자면 총괄프로듀서인 나도 제작비를 직접적으로 관리할 권한이 없는 것이다. 총괄프로듀서가 캐스팅과 투자유치, 스텝구성, 제작비 책정을 했고, 실제적인 모든 집행은 현장프로듀서가 하게 되어 있었다.

-제작사는 투자사가 제작비를 집행하지 않아 촬영을 중단하려 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총괄프로듀서가 투자사와 감독과만 협의해서 무리하게 진행시킨 탓에 제작사는 다른 곳에서 돈을 융통했고 그 때문에 채무를 지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얼마의 채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제작비는 투자사가 100% 내줬다. 제작사는 경상비 1억원과 기획료 1억원, 그리고 그외 행사로 인한 수익금 전액을 가졌고, 개봉 전 투자사가 두 차례에 걸쳐 1억원씩 지급한 돈도 제작사가 우선 회수하고는 제작프로듀서들은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

-제작사의 고소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노조쪽에서는 내가 7억을 횡령했고 4억을 배임했다고 하는데, 내가 예산 관련 자료를 정산담당자로부터 받아 보관하고 있다. 언론이 요청한다면 언제든 공개할 수 있다. 또 필요하다면 각 협회와 합의를 통해 제3의 회계법인을 거쳐 순수제작비를 정산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거짓주장을 하는 MK두손코리아가 나한테 씌운 누명을 벗을 것이다. 앞으로 영화를 계속해야 하는 나로서는 명예회복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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