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관련 뉴스에서 제일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몸싸움이나 막말이 아니다. 배지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소수정당인 민주노동당이 펼침막을 드는 것은 일면 이해가 가지만, 그조차 그리 달갑지는 않다. 피켓은 싸울 무기가 없는 사람들 손에 들려야 하는 것이다. 한명 한명이 입법기관인 배지들이 추운 날 맨몸으로 거리에 나서는 이들의 ‘영업수단’까지 동원하는 모습은 심히 거북하다. 제1야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에게 예산안 강행처리를 따지러 가면서 꼭 손팻말을 들어야 해? 머리를 써야지 왜 종이를 쓰냐고.
올 연말 술자리의 주요 건배사는 “이대로!”라고 한다. 월급쟁이들의 “이대로(부디 잘리지 말자)”와 저들의 “이대로(다 쓸어먹어버리자)”는 다르다. 어지간하면 현실과 타협하는 내가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뉴스는, 저들이 사랑의 열매까지 넘본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코묻은 돈, 수화기 들고 누르는 1천원을 주춧돌로 기부천사들의 기부와 기업의 사회공헌금을 모아 기부자의 뜻을 대행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두고, 독점적 지위니 파행운영이니 기부시장 활성화에 역행한다느니 생떼를 쓰고 있다. 어휴, 침이나 닦으셔.
지난해 사랑의 열매 모금은 2700억원. 올해 목표는 그보다 낮춰 잡았지만,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안간힘이 묻어난다. 공동모금회는 지난 10년 동안 정치적 외압이나 입김없이 민간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돼왔다. 그게 원칙이자 존재 이유였다. 우리의 기부문화가 척박한 것이 시장논리를 따르지 못해서인가. 그런데 청와대가 앞장서 민간의 기부활동을 정부가 사실상 관리·감독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동모금회 개정법을 연내에 우선 처리하라고 지휘하고, 여당 배지들과 관료들은 시장논리 운운하며 돌격대 노릇을 한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는 이를 두고 “정치권력과 관료권력의 이중폭격”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복지부 퇴임관료 한 사람 심을 수 없고 배분사업 한건에도 입깁을 넣을 수 없었던 이 기관을, 관료권력으로선 용납할 수 없나 보다. 또 수천억원의 모금액이 지향점이 안 맞는 이들의 손에 쥐어져 있고 그 용도에 일체 관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정치권력으로선 용납할수 없나 보다.
아무리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온갖 곳에서 주인 행세를 해도, 사람들의 선의와 선행까지 이렇게 마구잡이로 빼앗으려 해선 안된다. 문득 어린 시절 핫도그 하나를 여럿이 나눠 먹을 때 혀 내밀어 케첩만 쏙 훑어먹던 애 모습이 떠오른다. 달디단 캐첩은 일단 챙겨먹고 비위 상한 핫도그 주인이 그냥 너 다 먹어 그러길 바라는 그런 애. 대체 다음 선거는 언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