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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배우스케치] 로버트 패틴슨

<트와일라잇> 시사회에서 돌아오니 누군가가 묻더군요. “전 로버트 패틴슨 때문에 볼 거예요. 어때요?” 그래서 전 대답했지요. “연기를 못해요.” 거짓말은 아니었어요. 로버트 패틴슨은 <트와일라잇>에서 그냥 연기를 못했죠.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냥 끝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올랜도 블룸을 잇는 제2의 나무토막 배우가 나온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전 그 답변이 너무 단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잘하는 연기에 수만 가지 종류가 있는 것처럼 못하는 연기도 그만큼 다양하지요.

올랜도 블룸과 비교하면 어떤가? 일대일 비교는 불가능하죠. 일단 블룸이 패틴슨보다 나은 배우예요. 그는 나무토막 배우라는 말을 들을지 몰라도 어색하지는 않아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그의 연기는 적절했어요. 적당히 투명하고 적당히 영웅적이라 받아들이기 쉬웠죠. 대단치는 않아 보이더라도 자기에게 맞는 역을 찾고 그걸 적절하게 해낸다면 우리가 트집 잡을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로버트 패틴슨이 <트와일라잇>에서 보여주는 연기에는 그런 편안한 중립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그는 영화 내내 얼굴 근육에 힘을 잔뜩 주고 “나는 연기해!”를 외쳐댑니다. 사실 대사가 그렇게까지 많지 않지만 입을 딱 다물고 가만히 있을 때도 뭔가를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의 연기를 보니 <프렌즈>의 조이가 알 파치노의 엉덩이 대역을 하다가 지나치게 연기를 많이 해 쫓겨난 에피소드가 생각나더군요. 연기가 너무 많은데, 그 연기 자체가 굉장히 어색하고 불편했던 겁니다. 그의 연기엔 편안함이나 자연스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이 어색함을 캐릭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적어도 그가 연기한 캐릭터 뱀파이어 에드워드는 도입부에서 여자주인공 벨라에게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그건 사랑 반 식욕 반이죠. 나름대로 윤리적인 존재인 그는 이 딜레마 때문에 괴로워하는데, 그게 표출된 것이 바로 제가 보았던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였던 거죠. 이치는 맞아요. 논리도 서 있고요.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문제지.

왜 그는 저 역할을 저렇게 하고 있는 것일까? 전 생각했어요. 일차적인 답이 나오더군요. 로버트 패틴슨이라는 배우가 캐릭터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죠.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가 이전에 출연했던 <해리 포터> 시리즈와는 달리 이런 이야기는 딱 13살짜리 미국 여자아이들의 수준을 고려한 것이죠. 거기서 몇살만 넘어가도 적응이 어렵습니다. 로버트 패틴슨은 남자이고 영국인이고 스물을 넘겼죠. 그가 캐릭터 에드워드에 몰입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건 오히려 정상이에요!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건 그가 단순히 몰입하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서 이해하려 해도 마음이 통하지 않는 걸 어떻게 합니까. 노련한 배우라면 느물거리면서 그 사이를 연결할 중간지점을 찾아 자신을 표현할 텐데 슬프게도 그에겐 그럴 만한 실력이나 경험이 없습니다. 고로 그는 영화 내내 몸을 배배 꼬면서 그 갈등을 표출하고, 영화는 그걸 보고 본능과 이성의 갈등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설명은 아귀가 맞지 않아요.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어색하고 굳어 있고 아귀가 맞지 않는 연기는 <트와일라잇>의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가 연기를 중간급 정도만 했다면 <트와일라잇>은 한없이 밍밍하기만 한 영화로 남았겠지요. 가끔 서툰 배우들의 나쁜 연기가 영화에 재미를 더하는 경우가 있는데, <트와일라잇>이 바로 그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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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