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개의 이야기가 평행선을 그리며 전개된다. 어린 시절 누나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그것을 막지 못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는 미스터리 소설 작가 폴 그레이브스의 이야기, 그 작가의 연작소설에 등장하는 늙고 지친- 수십년간 뒤쫓은 절대 악당을 이젠 감당할 여력이 없어 보이는- 형사 슬로백의 이야기, 50년 전 친구 페이예를 죽인 범인을 찾아달라며 폴을 대저택에 초대한 앨리슨 여사와 저택 사람들 이야기. 세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틀린 채 연결되어 있다. 슬로백은 그레이브스의 누나를 죽인 동명의 악당을 추적하며 작가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폴의 분신이며, 페이예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이 드러날수록 폴은 누나의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 전진하는 동안 고통스럽고 어두운 기억과 죽음의 이미지가 등장인물들의 일상 속으로 침투한다.
<밤의 기억들>은 오랜만에 접하는 느린 박자의 서스펜스물이다. 박진감 넘치는 전개도, 독자의 허를 찌르는 참신한 결말도 없지만 작품 전체에 안개처럼 스며든 음울한 정서가 긴 여운을 남긴다. 현재에서 과거로, 현실에서 상상으로 유연하게 넘나드는 시점 때문인지 누아르영화로 재구성해도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