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극장에서만 소비되던 ‘순수의 시대’가 있었다. 그러다 방송이 시작됐고, 비디오가 보급됐다. 그 뒤로 영화는 극장에서 시작해 비디오를 거쳐 방송에서 수명을 마치게 됐다. 하지만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을 마친 지 얼마 안돼 비디오로 출시되자 뒤늦게라도 극장을 찾으려던 관객은 비디오 출시를 기다리게 됐다. 비디오와 방송 사이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홀드백은 이러한 미디어간의 이해 충돌을 막고 각각의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극장 종영 6개월 뒤 비디오 출시, 비디오 출시 1년 뒤 방송’ 식으로 규정된 홀드백은 그러니까 공생을 전제로 합의된 불문율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홀드백의 엄정한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있다. 현재 각축을 벌이는 케이블TV, 위성TV, IPTV 등 뉴미디어를 비롯해 유료 온라인 다운로드 서비스까지 모두 영화라는 콘텐츠를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특히 막강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IPTV가 <멋진 하루> <고고70> <신기전> 등을 비디오·DVD 출시 이전에 PPV(Pay Per View: 편당 과금방식)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홀드백을 둘러싼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12월10일 영화진흥위원회 주최로 열린 포럼 ‘멀티플랫폼 콘텐츠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영진위 김현정 연구원은 ‘영화산업 환경 변화-제작과 유통의 다변화’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새로운 홀드백 모델을 제시했다. “업계 관계자들과 격론 끝에 도출한” 이 홀드백 모델은 새로운 미디어에서 영화 유통의 순서와 유예기간을 규정했다. 이 안에 따르면 극장에서 종영한 지 4주 뒤 IPTV의 프리미엄 PPV형 VOD 서비스를 하고, 그게 끝난 지 4주 뒤 디지털케이블TV와 IPTV의 PPV형 VOD서비스와 위성TV의 PPV가 서비스를 시작하며, 그 뒤 프리미엄 영화채널, 지상파, 영화채널, 무료 VOD 서비스가 차례로 이어지는 모델이다. 그는 “극장 종영 뒤 4주 만에 프리미엄 유료서비스를 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지만 3500원이라는 요금을 받기 때문에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또한 KT의 메가TV와 SK텔레콤의 SK브로드밴드가 계열사가 투자한 영화를 독점적으로 서비스하는 것에 대해 “영화산업 수익성 악화를 극대화시키는 행위”라면서 “플랫폼 홍보를 위한 무분별한 콘텐츠 독점은 지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모델에 따라 교통정리가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홀드백에 대한 영화산업 전반의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데는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